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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

영동 무첨재 (永同 無添齋)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93.06.04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매곡면 옥전2길 69 (옥전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순흥안씨종중

조선 중종 17년(1522) 왕가의 외손자 안요가 후학을 교육하고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다. 후학들이 세상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라는 뜻에서 ‘무첨재’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1872년 화재로 일부가 타버려 고쳐지었고 1911년, 1948년에도 수리하였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94년에 고친 것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하여 짜 맞추는 수법(익공 양식)을 이용하였다. 가운데 2칸에 널따란 마루를 두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 끝방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무첨재는 조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조선 중종 17년(1522) 왕가의 외손자 안요가 후학을 교육하고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다. 후학들이 세상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라는 뜻에서 ‘무첨재’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1872년 화재로 일부가 타버려 고쳐지었고 1911년, 1948년에도 수리하였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94년에 고친 것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하여 짜 맞추는 수법(익공 양식)을 이용하였다. 가운데 2칸에 널따란 마루를 두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 끝방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무첨재는 조선 후기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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