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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

을축갑회도 (乙丑甲會圖)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일반회화 / 기록화 / 계회도
수량/면적 1軸
지정(등록)일 2003.12.30
소 재 지 서울 종로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서***

이 그림은 1625년(인조3) 을축년(乙丑年)에 태어난 7명의 동갑들이 회갑을 맞은 기념으로 계회(契會)를 연 장면을 그린 것이다.

구도면에서 조선 전기 계회도의 전형적인 3단 형식을 취해 제작된 이 그림은 맨 위에 전서(篆書)로 쓴 ‘을축갑회도(乙丑甲會圖)’라는 제목이 있고 중간 부분에는 계회(契會)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참석자들의 명단인 좌목(座目)이 있다. 대개 계회도(契會圖)의 제목은 묵서(墨書)로 쓰여 지나 이 그림은 주서(朱書)로 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예이다.

을축년(乙丑年) 동갑 계원(同甲 契員)들과 그 자제들이 앉아 잔치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 묘사된 중간 부분의 그림은 17세기 전반까지의 소략(疏略)한 계회도풍(契會圖風)에서 18세기의 보다 정교한 아회도풍(雅會圖風)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양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배경을 배제하고 건물을 가깝게 부각시켜 인물의 초상적 특징을 훨씬 더 자세히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 위 부분 왼쪽 끝에는계회(契會)가 열린 날을 ‘숭정무인십일월일(崇禎戊寅十一月日 : 서기로 환산할 때 1698년 11월)’이라 명기하고 있는데 이 계회 관련기록인 『죽림갑계문서(竹林甲契文書, 충북 유형문화재 제 135호)』에는 이 갑계(甲契)가 1660년에 결성되고 계원들이 62세가 되는 1686년(丙寅,숙종 12)에 계회가 개최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그림에 계회(契會)개최일로 기록된 ‘숭정무인(崇禎戊寅)’은 후에 가필(加筆)할 때 ‘숭정병인(崇禎丙寅)’을 잘못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인물의 얼굴과 건물바닥 등 박락(剝落) 부분에 가필(加筆), 가채(加彩)했으며 좌목(座目)에도 가필(加筆)흔적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가필(加筆)과 가채(加彩)에도 불구하고 장황(粧潢,책이나 그림을 꾸미고 단장하는 행위) 형식을 포함해 화면의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고 조선시대 동갑계회도의 드문 유물이며 17세기 후반 계회도(契會圖)의 변화상과 당시의 풍속상(風俗相)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계회도(契會圖)의 대부분이 관아(官衙)중심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지방 서민 노인들의 모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이 그림은 1625년(인조3) 을축년(乙丑年)에 태어난 7명의 동갑들이 회갑을 맞은 기념으로 계회(契會)를 연 장면을 그린 것이다.

구도면에서 조선 전기 계회도의 전형적인 3단 형식을 취해 제작된 이 그림은 맨 위에 전서(篆書)로 쓴 ‘을축갑회도(乙丑甲會圖)’라는 제목이 있고 중간 부분에는 계회(契會)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아랫부분에는 참석자들의 명단인 좌목(座目)이 있다. 대개 계회도(契會圖)의 제목은 묵서(墨書)로 쓰여 지나 이 그림은 주서(朱書)로 되어 있는데 이는 매우 드문 예이다.

을축년(乙丑年) 동갑 계원(同甲 契員)들과 그 자제들이 앉아 잔치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 묘사된 중간 부분의 그림은 17세기 전반까지의 소략(疏略)한 계회도풍(契會圖風)에서 18세기의 보다 정교한 아회도풍(雅會圖風)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양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배경을 배제하고 건물을 가깝게 부각시켜 인물의 초상적 특징을 훨씬 더 자세히 드러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림 위 부분 왼쪽 끝에는계회(契會)가 열린 날을 ‘숭정무인십일월일(崇禎戊寅十一月日 : 서기로 환산할 때 1698년 11월)’이라 명기하고 있는데 이 계회 관련기록인 『죽림갑계문서(竹林甲契文書, 충북 유형문화재 제 135호)』에는 이 갑계(甲契)가 1660년에 결성되고 계원들이 62세가 되는 1686년(丙寅,숙종 12)에 계회가 개최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 그림에 계회(契會)개최일로 기록된 ‘숭정무인(崇禎戊寅)’은 후에 가필(加筆)할 때 ‘숭정병인(崇禎丙寅)’을 잘못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은 인물의 얼굴과 건물바닥 등 박락(剝落) 부분에 가필(加筆), 가채(加彩)했으며 좌목(座目)에도 가필(加筆)흔적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가필(加筆)과 가채(加彩)에도 불구하고 장황(粧潢,책이나 그림을 꾸미고 단장하는 행위) 형식을 포함해 화면의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고 조선시대 동갑계회도의 드문 유물이며 17세기 후반 계회도(契會圖)의 변화상과 당시의 풍속상(風俗相)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계회도(契會圖)의 대부분이 관아(官衙)중심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지방 서민 노인들의 모임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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