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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63호

성주백세각 (星州百世閣)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2.08.04
소 재 지 경북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 542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송만수

조선 전기의 문신 송희규(1494∼1558)가 세운 곳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율곡, 한석봉, 채번암의 친필을 한 점씩 소장하고 있었으나 한석봉의 글은 1970년 도난 당했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7칸이고 평면은 ㅁ자형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다른 연장(자귀)으로 나무를 다듬은 점이 특이한 건물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독립청원장서를 복사했던 곳이라고 하며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이 장서를 건네주기 위해 모임을 갖았던 장소로, 3·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송희규(1494∼1558)가 세운 곳으로 명종 6년(1551)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비가 오는 날 자정에는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 때문에 종손이 아니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율곡, 한석봉, 채번암의 친필을 한 점씩 소장하고 있었으나 한석봉의 글은 1970년 도난 당했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7칸이고 평면은 ㅁ자형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은 점과 대패를 쓰지 않고 다른 연장(자귀)으로 나무를 다듬은 점이 특이한 건물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독립청원장서를 복사했던 곳이라고 하며 1919년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유림단이 장서를 건네주기 위해 모임을 갖았던 장소로, 3·1독립운동과도 관련이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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