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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28호

김장생문묘배향교지 (金長生文廟配享敎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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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수량/면적 1점
지정(등록)일 1987.12.30
소 재 지 충남 논산시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시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을 문묘에 제사지내도록 숙종 43년(1717)에 내린 교지이다.

김장생은 조선시대 학자로 선조 11년(1578)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정산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정랑으로 명나라 군사의 군량조달에 공을 세웠고, 선조 35년(1602) 청백리에 천거되었으며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문하에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형성하였다.

한지에 세로로 내려 쓴 이 교지는 총 624자 48줄로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김장생의 학문과 사상이 국가사회에 기여하였고 특히 예학의 대가로서 인간생활의 도덕성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문묘에 모시도록 한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시계 김장생(1548∼1631) 선생을 문묘에 제사지내도록 숙종 43년(1717)에 내린 교지이다.

김장생은 조선시대 학자로 선조 11년(1578)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정산현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조정랑으로 명나라 군사의 군량조달에 공을 세웠고, 선조 35년(1602) 청백리에 천거되었으며 형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문하에 송시열, 송준길 등 서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를 형성하였다.

한지에 세로로 내려 쓴 이 교지는 총 624자 48줄로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김장생의 학문과 사상이 국가사회에 기여하였고 특히 예학의 대가로서 인간생활의 도덕성 확립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문묘에 모시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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