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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영광향교 (靈光鄕校)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향교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1985.02.25
소 재 지 전남 영광군 영광읍 향교길 32 (교촌리)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영광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영광향교는 선조 15년(1582)에 수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하였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한 제사공간을 두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어, 향교 배치의 일반적 형식인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서울 문묘를 복원할 때 이 향교의 배치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영광향교는 선조 15년(1582)에 수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하였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한 제사공간을 두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어, 향교 배치의 일반적 형식인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서울 문묘를 복원할 때 이 향교의 배치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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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남 영광군 문화관광과 061-350-5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