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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04호

초려이유태유고 (草廬李惟泰遺稿)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필사본 / 고본
수량/면적 4책
지정(등록)일 1984.01.11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조선 현종때의 학자인 초려 이유태(1607∼1684)의 글을 엮은 책[遺稿]이다. 집안의 가훈인 「정훈(庭訓)」1책, 시문을 엮은 「초려시필(草廬詩筆)」1책 과 「초려선생필(草廬先生筆)」 2책 등 4책으로 이루어져 예학으로 이름 높았던 이유태의 학문과 사상은 물론, 조선후기 충청 양반가의 생활 지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유태는 조선시대 산림인 충청오현(忠淸五賢)의 한명으로 17세기 호서유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고, 인조때 세자의 사부를 지냈으며 이조참의, 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45세에 충청도 공주에 머물며 후학을 길렀고, 그가 별세한 후 공주 상왕동은 경주이씨가의 세거지가 되었다.

조선 현종때의 학자인 초려 이유태(1607∼1684)의 글을 엮은 책[遺稿]이다. 집안의 가훈인 「정훈(庭訓)」1책, 시문을 엮은 「초려시필(草廬詩筆)」1책 과 「초려선생필(草廬先生筆)」 2책 등 4책으로 이루어져 예학으로 이름 높았던 이유태의 학문과 사상은 물론, 조선후기 충청 양반가의 생활 지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유태는 조선시대 산림인 충청오현(忠淸五賢)의 한명으로 17세기 호서유학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고, 인조때 세자의 사부를 지냈으며 이조참의, 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45세에 충청도 공주에 머물며 후학을 길렀고, 그가 별세한 후 공주 상왕동은 경주이씨가의 세거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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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충남 공주시 문화재과 ☎ 1899-0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