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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87호

북한산성금위영이건기비 (北漢山城禁衛營移建記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79.09.03
소 재 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32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고양시

북한산성 내의 대성암이라는 암자 아래에 놓여 있는 비로, 수비를 맡고 있던 금위영의 터를 옮긴 후 이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백제 개루왕 5년(32)에 처음 지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산성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자 숙종 37년(1711) 대대적인 공사를 하게되었다. 이 산성의 수비대장은 영의정이 겸하였고,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을 설치하여 이 지역을 수비하였다. 원래 금위영은 동소문(東小門)안에 있었으나 그 지대가 높아 무너지기 쉬우므로, 보국사(輔國寺)아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비는 누워있는 일종의 와비(臥碑)의 형태로, 뒷면은 흙속에 묻혀있고, 비몸 한쪽으로 낙수면을 새긴 지붕돌의 일부가 보인다.

비에 새긴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숙종 41년(1715)에 이 비를 세웠으며, 도제조 이이명이 비문을 지었다 한다.

북한산성 내의 대성암이라는 암자 아래에 놓여 있는 비로, 수비를 맡고 있던 금위영의 터를 옮긴 후 이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백제 개루왕 5년(32)에 처음 지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산성의 중요성이 더욱 두드러지자 숙종 37년(1711) 대대적인 공사를 하게되었다. 이 산성의 수비대장은 영의정이 겸하였고, 훈련도감·어영청·금위영을 설치하여 이 지역을 수비하였다. 원래 금위영은 동소문(東小門)안에 있었으나 그 지대가 높아 무너지기 쉬우므로, 보국사(輔國寺)아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비는 누워있는 일종의 와비(臥碑)의 형태로, 뒷면은 흙속에 묻혀있고, 비몸 한쪽으로 낙수면을 새긴 지붕돌의 일부가 보인다.

비에 새긴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숙종 41년(1715)에 이 비를 세웠으며, 도제조 이이명이 비문을 지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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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경기 고양시 문화예술팀 031-8075-338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