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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

이덕성가 문적 (李德成家 文籍)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전적류 / 전적류
수량/면적 79점
지정(등록)일 2008.04.02
소 재 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덕성가는 정치적으로는 소론, 학문적으로는 양명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조선후기에는 강화학파를 형성하여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사회에 정치적, 학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집안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육진팔광(六眞八匡)을 배출하였다. 아울러 대대로 명필을 많이 배출하여 이광사의 필체는‘원교체’라 하여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었다.

이 고문서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인 17~18세기의 것들이다. 이들 문적들이 시기적으로는 300~400년 남짓하지만 보물 제1501호로 지정된 ‘이덕성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李德成肖像 및 關聯資料 一括)’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이들 문적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그리고 고서의 경우 명문가의 저서로서 명필가의 필적과 유명인의 친필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대부분이 유일본인 필사본이라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서지학, 국문학, 고미술사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고문서의 경우도 당시의 과거제도와 인사행정 뿐만 아니라 한국의 씨족사·명문가(氏族史·名門家)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데, 특히 서간공 이진수(西澗公 李眞洙)의 교첩과 교지가 총 56매로서 빠짐없이 다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덕성가는 정치적으로는 소론, 학문적으로는 양명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조선후기에는 강화학파를 형성하여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사회에 정치적, 학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집안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육진팔광(六眞八匡)을 배출하였다. 아울러 대대로 명필을 많이 배출하여 이광사의 필체는‘원교체’라 하여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었다.

이 고문서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인 17~18세기의 것들이다. 이들 문적들이 시기적으로는 300~400년 남짓하지만 보물 제1501호로 지정된 ‘이덕성초상 및 관련자료 일괄(李德成肖像 및 關聯資料 一括)’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 이들 문적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그리고 고서의 경우 명문가의 저서로서 명필가의 필적과 유명인의 친필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대부분이 유일본인 필사본이라는 점 때문에 우리나라의 서지학, 국문학, 고미술사학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고문서의 경우도 당시의 과거제도와 인사행정 뿐만 아니라 한국의 씨족사·명문가(氏族史·名門家)의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데, 특히 서간공 이진수(西澗公 李眞洙)의 교첩과 교지가 총 56매로서 빠짐없이 다 보존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등은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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