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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사천 다솔사 대양루 (泗川 多率寺 大陽樓)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각루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용산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다솔사
관리자(관리단체) 다솔사

와룡산 기슭에 있는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처음 짓고 영악사라 하였다. 선덕여왕 5년(636)에 절을 늘려 짓고 다솔사라고 부르다가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영봉사라 하였다. 경문왕(재위 861∼875) 때 도선국사에 의해 다시 다솔사로 부르게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숙종 6년(1680)에 다시 지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양루는 영조 24년(1748)에 지은 것이다.

대양루는 다솔사의 본전인 대적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고 절의 행사 때 사용하는 도구나 그릇을 보관하기도 한다. 보통 절의 누각은 윗층은 마루·아랫층은 문으로 이용하는데, 대양루는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규모이며,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을 달았다. 대적광전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나 좌우 양쪽과 뒷쪽에 벽을 설치하여 막았고, 뒷쪽에는 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앞마당과 누각 마루는 떨어져 있고 오른쪽 퇴칸 앞으로 돌다리를 걸쳐 출입하고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매우 견실한 느낌을 주는 누각건물이다.

와룡산 기슭에 있는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처음 짓고 영악사라 하였다. 선덕여왕 5년(636)에 절을 늘려 짓고 다솔사라고 부르다가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영봉사라 하였다. 경문왕(재위 861∼875) 때 도선국사에 의해 다시 다솔사로 부르게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숙종 6년(1680)에 다시 지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양루는 영조 24년(1748)에 지은 것이다.

대양루는 다솔사의 본전인 대적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고 절의 행사 때 사용하는 도구나 그릇을 보관하기도 한다. 보통 절의 누각은 윗층은 마루·아랫층은 문으로 이용하는데, 대양루는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규모이며,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을 달았다. 대적광전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나 좌우 양쪽과 뒷쪽에 벽을 설치하여 막았고, 뒷쪽에는 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앞마당과 누각 마루는 떨어져 있고 오른쪽 퇴칸 앞으로 돌다리를 걸쳐 출입하고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매우 견실한 느낌을 주는 누각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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