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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6호

순천팔마비 (順天八馬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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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0.06.02
소 재 지 전남 순천시 중앙로 95 (영동)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순천시

비석은 현재 영동 우리은행(구 승주군청) 앞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비의 전면에는 팔마비八馬碑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팔마비의 건립내역을 적은 내용이 음각되어 있으나 마모되어 내용 판독이 힘들다. 이 비의 건립 배경에 대해서는『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려사』권34의 열전 최석에 기록된 관계 사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승평부에서는 태수가 바뀌어 돌아가면 태수에게는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필을, 그리고 법조에게는 6필을 주되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석碩이 갈려감에 미쳐서도 읍인들이 말을 바치고 좋은 것 고르기를 청하니 석이 웃으며 말하기를“능히 서울에만 이르면 족할 것이어늘 말을 골라서 무엇하겠는가.”라고 하며 집에 돌아간 뒤 그 말들을 되돌려 보내니, 고을사람들이 받지 않으므로 석이 말하기를“내가 그대들 고을에 수령으로 가서 말이 망아지를 낳은 것을 데리고 온 것도 이는 나의 탐욕이 된다. 그대들이 지금 받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탐을 내서 겉으로만 사양하는 줄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그 망아지까지(모두 9필) 아울러 돌려주니 이로부터 증마贈馬의 폐단이 마침내 끊어졌으므로 고을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하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까지 순천지역에 널리 알려진 팔마비 의 유래이며, 이 비는 한국의 역사상 지방관의 선정 겸 청덕비의 효시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가 있다.

비석은 현재 영동 우리은행(구 승주군청) 앞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비의 전면에는 팔마비八馬碑라는 글자가 양각되어 있으며, 비의 후면에는 팔마비의 건립내역을 적은 내용이 음각되어 있으나 마모되어 내용 판독이 힘들다. 이 비의 건립 배경에 대해서는『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려사』권34의 열전 최석에 기록된 관계 사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승평부에서는 태수가 바뀌어 돌아가면 태수에게는 말 8필을 주고, 부사(副使)에게는 7필을, 그리고 법조에게는 6필을 주되 마음대로 고르게 하였다. 석碩이 갈려감에 미쳐서도 읍인들이 말을 바치고 좋은 것 고르기를 청하니 석이 웃으며 말하기를“능히 서울에만 이르면 족할 것이어늘 말을 골라서 무엇하겠는가.”라고 하며 집에 돌아간 뒤 그 말들을 되돌려 보내니, 고을사람들이 받지 않으므로 석이 말하기를“내가 그대들 고을에 수령으로 가서 말이 망아지를 낳은 것을 데리고 온 것도 이는 나의 탐욕이 된다. 그대들이 지금 받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탐을 내서 겉으로만 사양하는 줄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하고 그 망아지까지(모두 9필) 아울러 돌려주니 이로부터 증마贈馬의 폐단이 마침내 끊어졌으므로 고을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하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까지 순천지역에 널리 알려진 팔마비 의 유래이며, 이 비는 한국의 역사상 지방관의 선정 겸 청덕비의 효시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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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라남도 순천시 문화관광과 061-749-3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