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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56호

도천재단서죽백 (道川齋丹書竹帛)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문서류 / 국왕문서 / 교령류
수량/면적 1매
지정(등록)일 1972.02.12
소 재 지 경남 함안군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인***

이 교서는 인조 3년(1625)에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이휴복(1568∼1624)에게 진무공신 3등에 해당하는 급여를 내려준 공신교서이다. 크기는 가로 198㎝, 세로 38㎝의 두루마리로 되어있다.

이휴복 선생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꼐 의병을 일으켰고, 선조 39년(1606)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 순천군수 등의 벼슬을 지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 별장으로 안현에서 공을 세웠다. 공신에 오른 후 인원군에 봉해졌으며, 순천부사로 부임해 그곳에서 죽었다.

이것은 해서체로 쓰여졌으며, 공신으로 책록된 연유와 하사된 토지, 노비 등과 내려준 연월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뒷면에는 교서의 제작과 글씨를 쓴 사람이 나와 있다.

이것은 당시 공신들에게 지급한 경제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경제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이 교서는 인조 3년(1625)에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이휴복(1568∼1624)에게 진무공신 3등에 해당하는 급여를 내려준 공신교서이다. 크기는 가로 198㎝, 세로 38㎝의 두루마리로 되어있다.

이휴복 선생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함꼐 의병을 일으켰고, 선조 39년(1606)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 순천군수 등의 벼슬을 지냈다.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 별장으로 안현에서 공을 세웠다. 공신에 오른 후 인원군에 봉해졌으며, 순천부사로 부임해 그곳에서 죽었다.

이것은 해서체로 쓰여졌으며, 공신으로 책록된 연유와 하사된 토지, 노비 등과 내려준 연월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뒷면에는 교서의 제작과 글씨를 쓴 사람이 나와 있다.

이것은 당시 공신들에게 지급한 경제적인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로 경제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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