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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0호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공주 묘역 (良孝公 安孟聃과 貞懿公主 墓域)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분묘 2基, 석물 10基, 토지 1,794㎡
지정(등록)일 1982.11.1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안***

조선 세종의 딸 정의공주의 부군인 양효공 안맹담(1415∼1462)의 묘소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이다.

안맹담은 세종 10년(1428)에 부마(駙馬:임금의 사위)가 되어 죽성군이 되었고, 세종 14년(1432)에는 연창군에, 세조 3년(1457)에는 원종공신이 되었다.

묘는 정의공주와 쌍분으로, 봉분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 석등과 4기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조각과 머릿돌에 새겨진 두마리의 용조각은 매우 뛰어나면서도 정교한 편이다. 비문은 정인지가 지었고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빈세가 썼다.

조선 세종의 딸 정의공주의 부군인 양효공 안맹담(1415∼1462)의 묘소와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이다.

안맹담은 세종 10년(1428)에 부마(駙馬:임금의 사위)가 되어 죽성군이 되었고, 세종 14년(1432)에는 연창군에, 세조 3년(1457)에는 원종공신이 되었다.

묘는 정의공주와 쌍분으로, 봉분 2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봉분 앞에 석등과 4기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는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돌의 거북조각과 머릿돌에 새겨진 두마리의 용조각은 매우 뛰어나면서도 정교한 편이다. 비문은 정인지가 지었고 글씨는 안맹담의 넷째 아들 빈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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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서울특별시 도봉구 문화공보과 02-2289-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