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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 (柔遠閣先生 埋案感古碑 및 碑閣)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1.10.25
소 재 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석비는 광무 10년(1906)에 세워졌으며, 조선 후기 대일외교의 실무관청이었던 유원각(柔遠閣)과 관련된 유일한 금석문 자료이다.

비석에는 비의 건립배경과 목적, 비석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어, 약조제찰비(시도기념물 제17호)와 함께 왜관(倭館) 및 조선 후기∼근대의 부산역사와 대일관계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비각은 전통적인 목조 기와지붕의 비각과는 달리 비각 전체가 석조로 조성된 것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며, 비각의 형태나 결구방식도 전통적인 양식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생산사적 측면에서 크게 주목되는 자료이다.

특히 비각은 오랜 동안 대일 외교의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의 지정학적 입장에서는 한일 문화의 교류와 전파의 단초가 된다는 점과 비각 건립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적 산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유구이다.

이 석비는 광무 10년(1906)에 세워졌으며, 조선 후기 대일외교의 실무관청이었던 유원각(柔遠閣)과 관련된 유일한 금석문 자료이다.

비석에는 비의 건립배경과 목적, 비석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어, 약조제찰비(시도기념물 제17호)와 함께 왜관(倭館) 및 조선 후기∼근대의 부산역사와 대일관계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비각은 전통적인 목조 기와지붕의 비각과는 달리 비각 전체가 석조로 조성된 것으로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며, 비각의 형태나 결구방식도 전통적인 양식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생산사적 측면에서 크게 주목되는 자료이다.

특히 비각은 오랜 동안 대일 외교의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의 지정학적 입장에서는 한일 문화의 교류와 전파의 단초가 된다는 점과 비각 건립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적 산물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유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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