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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농암각자 (聾巖刻字)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석각류
수량/면적 일괄
지정(등록)일 1973.08.31
소 재 지 경상북도 안동시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안동시 문화유산과 054-840-5225~6

이 각자는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정자 옛 터를 표시하기 위해 앞면을 다듬은 4개의 바위에 새기었다.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으로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과 외직으로 밀양과 안동, 충주 등지의 지방관을 지냈다. 이후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내고 1542년 76세 때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을 고향에 돌아와 지냈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소재로 삼아 시조를 지은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바위에는 ‘농암선생정대구장(壟巖先生亭臺舊庄)’이라고 두 글자씩 음각되어 있다. 글자의 크기는 약 75㎝이며, 안동지방의 음각글씨로는 가장 크다. 안동댐 건설로 물속에 잠길 것을 막기 위해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 각자는 농암 이현보(1467∼1555) 선생의 정자 옛 터를 표시하기 위해 앞면을 다듬은 4개의 바위에 새기었다.

이현보는 연산군 4년(1498)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으로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과 외직으로 밀양과 안동, 충주 등지의 지방관을 지냈다. 이후 형조참판, 호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내고 1542년 76세 때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을 고향에 돌아와 지냈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소재로 삼아 시조를 지은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바위에는 ‘농암선생정대구장(壟巖先生亭臺舊庄)’이라고 두 글자씩 음각되어 있다. 글자의 크기는 약 75㎝이며, 안동지방의 음각글씨로는 가장 크다. 안동댐 건설로 물속에 잠길 것을 막기 위해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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