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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

옥천 이지당 (沃川 二止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당
수량/면적 2동
지정(등록)일 1977.12.06
소 재 지 충북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이백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지복성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광무 5년(1901)에 옥천의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옆면 1칸의 강당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이다. 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다. 대청에는 조헌이 직접 쓴 ‘각신서당(覺新書堂)’의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 「이지당강학조약」 등이 남아있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처음에는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이 고장의 영재를 모아 교육하여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송시열은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는 문구의 끝인 지(止)를 따서 ‘이지당’이라 서당의 이름을 고치고 현판을 써서 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광무 5년(1901)에 옥천의 금씨·이씨·조씨·안씨 네 문중에서 다시 지은 것이다.

본채와 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채는 앞면 7칸·옆면 1칸의 강당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이다. 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둘렀다. 대청에는 조헌이 직접 쓴 ‘각신서당(覺新書堂)’의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 「이지당강학조약」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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