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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38호

적석사 사적비 (積石寺 事蹟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기타
수량/면적 1기(71,704㎡)
지정(등록)일 2001.04.02
소 재 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연촌길 181 (내가면)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대한불교조계종적석사
관리자(관리단체) 인천광역시 강화군청

적석사는 ¨전등사본말사지¨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석사를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94cm이고 비신의 높이 3m4cm, 너비 69cm이다. 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모양의 뚜껑돌이 얹혀 있으며 비신의 상부에 ¨고려산적석사지비(高麗山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증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올 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적석사는 ¨전등사본말사지¨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석사를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94cm이고 비신의 높이 3m4cm, 너비 69cm이다. 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모양의 뚜껑돌이 얹혀 있으며 비신의 상부에 ¨고려산적석사지비(高麗山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증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올 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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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인천 강화군 문화예술과 032-930-3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