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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추원재 (追遠齋)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73.08.31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안기2길 57-4 (안기동)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김봉제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안동시 문화유산과 054-840-5225~6

고려말 충신인 상촌 김자수를 제사지내는 재실로 조선 말기에 지어졌으며, 원래 노산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경주 김씨 세력이 커서 김씨골로 알려져 있는 금곡동에서 태어난 상촌은 고려말 나라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살았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종(재위 1400∼1418)이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결코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이숭인·정몽주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문장이 뛰어나 그의 글이 『동문선』에 실려있다.

재실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현판과 상촌의 15대손이 쓴 기문이 걸려있다.

고려말 충신인 상촌 김자수를 제사지내는 재실로 조선 말기에 지어졌으며, 원래 노산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경주 김씨 세력이 커서 김씨골로 알려져 있는 금곡동에서 태어난 상촌은 고려말 나라의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내려와 살았다. 조선이 개국된 뒤 태종(재위 1400∼1418)이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결코 무덤을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이숭인·정몽주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문장이 뛰어나 그의 글이 『동문선』에 실려있다.

재실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현판과 상촌의 15대손이 쓴 기문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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