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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지대비 (遲遲臺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72.05.04
소 재 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산 72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수원시

지지대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1807년(순조 7) 화성 어사 신현(申絢)의 건의로 세워졌다. 정조대왕은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현륭원(현재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 지(遲)’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의 비문은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師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지지대비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성을 추모하기 위해 1807년(순조 7) 화성 어사 신현(申絢)의 건의로 세워졌다. 정조대왕은 생부인 사도세자 능인 현륭원(현재 화성시 융릉)에 참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만 넘어서면 멀리서나마 능을 볼 수 없게 되므로, 언제나 이곳에서 행차를 멈추었다고 한다. 능을 뒤돌아보며 떠나기를 아쉬워했기 때문에 이곳에 이르면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였다고 하여 한자의 ‘느릴 지(遲)’ 두 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비의 비문은 서영보(徐榮輔)가 짓고, 윤사국(尹師國)이 글씨를 썼으며, 화성유수 홍명호(洪明浩)가 전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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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경기도 수원시 문화관광과 031-228-3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