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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이공제비및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李公제碑및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3기
지정(등록)일 1988.05.30
소 재 지 대구 수성구 상동 182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수성구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문화체육과 053-666-2161

한 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대구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었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온 이서 선생은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물길을 돌려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 ’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 ’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 비를 세워 그를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다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있는 비는 옆의 이공제비가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것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는 광무 3년(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은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이에 보답하고자 광무 3년(1899)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워 이공제비와 함께 보호하고 있다.

3기 모두 대구지방 수령을 지냈던 이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주민들이 나서서 세운 것으로, 이들이 오늘날의 대구를 이루게 한 사람들이라는데 큰 의의를 지닌다.

한 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대구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었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온 이서 선생은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물길을 돌려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 ’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 ’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 비를 세워 그를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여러 차례 장소를 옮겼다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있는 비는 옆의 이공제비가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것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는 광무 3년(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은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이에 보답하고자 광무 3년(1899)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워 이공제비와 함께 보호하고 있다.

3기 모두 대구지방 수령을 지냈던 이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주민들이 나서서 세운 것으로, 이들이 오늘날의 대구를 이루게 한 사람들이라는데 큰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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