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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

충렬사 (忠烈祠)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민간신앙 / 기타
수량/면적 5동(14,803㎡)
지정(등록)일 1995.03.02
소 재 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충렬사로 232 (선원면)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김종한
관리자(관리단체) 인천광역시 강화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에 위치한 충렬사는 김상용 선생을 비롯한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충신 29명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부르다가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꿨다.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해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 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고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이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여 현재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렬사는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행리에 위치한 충렬사는 김상용 선생을 비롯한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충신 29명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하여 현충사(顯忠祠)라 부르다가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꿨다.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원손을 수행해 강화도에 피난했다가 이듬 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南門樓)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고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이후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여 현재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렬사는 교육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는 없어지고, 현존 건물로는 한식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祠堂)과, 16평의 수직방(守直房), 14평의 전사청(典祀廳), 비각(碑閣),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으며, 1977년에 보수 정화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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