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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

제봉문집목판 (霽峰文集木版)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간본
수량/면적 481점
지정(등록)일 1992.03.16
소 재 지 광주 남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포***

『제봉문집』은 제봉 고경명(1533∼1592)의 유고문집으로, 고경명의 막내아들인 고명후가 남원부사로 있을 때 그 지역의 부자들에게 기부를 받아 간행한 것이다.

고경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58년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다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에서 도망쳐온 관군을 모아 왜적과 싸웠으며, 다시 의병을 일으켜 6천여명의 의병을 모아 항전하였다.

이 목판에는 고경명의 시문집인『제봉문집』5권과 빠진 부분을 보충한『속집』1권,『유집』1권 1책이 있다. 또한 여러 사람과 서석산(지금의 무등산)에 다녀온 기행문인『유서석록』,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맏아들, 둘째아들 삼부자의 활약상을 적은『정기록』, 고씨 문중의 갖가지 내용을 정리한『제하휘록』등 여러 문적들을 합쳐 간행한 것이다. 재질은 모두 박달나무로 양면에 새긴 것이다.

17세기 개인문집 목판으로 목판인쇄의 기술사 연구자료 등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제봉문집』은 제봉 고경명(1533∼1592)의 유고문집으로, 고경명의 막내아들인 고명후가 남원부사로 있을 때 그 지역의 부자들에게 기부를 받아 간행한 것이다.

고경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58년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다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에서 도망쳐온 관군을 모아 왜적과 싸웠으며, 다시 의병을 일으켜 6천여명의 의병을 모아 항전하였다.

이 목판에는 고경명의 시문집인『제봉문집』5권과 빠진 부분을 보충한『속집』1권,『유집』1권 1책이 있다. 또한 여러 사람과 서석산(지금의 무등산)에 다녀온 기행문인『유서석록』,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맏아들, 둘째아들 삼부자의 활약상을 적은『정기록』, 고씨 문중의 갖가지 내용을 정리한『제하휘록』등 여러 문적들을 합쳐 간행한 것이다. 재질은 모두 박달나무로 양면에 새긴 것이다.

17세기 개인문집 목판으로 목판인쇄의 기술사 연구자료 등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재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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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광주 남구 문화관광과 062-607-2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