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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선덕사소장갑인자복각묘법연화경 권1~2 (善德寺所藏甲寅字覆刻妙法蓮華經 券一~二)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전적류 / 목판본 / 사찰본
수량/면적 2권
지정(등록)일 2003.07.02
소 재 지
시 대 중종년간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064-760-2502

우리나라는 고려중기 이후로부터 금속활자 인쇄기술이 매우 발달되었던 사례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갑인자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계미자와 경자자 다음에 세 번째로 세종 16(1434) 갑인년에 구리(銅)를 주성분으로 주조된 금속활자이다. 특히 세종대의 고도의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주조되었던 까닭에 한국활자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정교한 활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 활자로 6차례 이상 개주를 거듭하였던 관계로 맨 첫 번째로 주조된 갑인자를 ‘초주갑인자’로 구분하여 이름하고 있다.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고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표방하였나, 인간의 내면적 문제는 불교로 치유하려는 의지가 없지 않았다. 이는 민간뿐 만 아니라, 오히려 궁중에서도 유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명장수와 공덕을 기원하는 수륙재 등의 여러 불교행사를 시행했다. 이러한 행사의 하나로 조선초기에 궁실에서 수많은 불경을 인출해 공덕을 비는 의례가 빈번하였으니, 급기야 세조가 궁중 안에 설치한 ‘간경도감’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런데 세종은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왕비를 일찍 여의고, 한편 동궁으로 있던 문종이 병약하여 중병에 이르자, 불경을 간행하여 불력으로 치유코자 하였다. 이에 세종 32(1450)년에 화엄경은 목판으로 인출케 하고, 법화경은 주자소에 명하여 활자로 33부를 간행케 하였는데, 이때 사용된 활자가 바로 ‘초주갑인자’이다. 그 후 전국의 유명 사찰에서는 이 “초주갑인자본 묘법연화경”을 저본으로 대략 30여 차례의 복각 간행이 실시되었다. 이 중의 한 종이 바로 현재 선덕사에 소장된 갑인자판 복각본 법화경이다.

선덕사 소장 갑인자판 복각 묘법연화경은 전 7권 중에 권1~2의 1책만이 소장되어 있는데, 형태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복장본인 까닭에 전후의 겉 표지는 제거된 상태로 있으며, 권수에는 사문 급남의 ‘요해서’가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권두제면을 기준으로 변란은 사주단변으로 되어 있으며, 그 반곽의 크기는 가로 16.5cm, 세로 26.5cm로 되어 있다. 계선은 없으며, 반엽은 10행으로 한 행은 18자씩 배자되어 있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특히 판심 부분은 갑인자본의 영향을 받아 어미는 상하흑어미가 하향하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판심제는 ‘묘법’과 그 밑으로 권수와 장수 표시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인쇄에 사용된 종이는 임진왜란 이전에 불경 인출에 흔히 사용된 지질이며, 자체는 갑인자체의 특징을 여실히 보이고 있는 점으로 보아 비교적 초기의 복각본으로 보인다. 이 선덕사본은 갑인자판 복각본 중에 비교적 초기의 판본으로 중종연간(1506~1544)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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