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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재 제13호

증심사오백전 (證心寺五百殿)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9.03.20
소 재 지 광주 동구 증심사길 177 (운림동)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증심사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증심사는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지었다. 고려 선종 10년(1094)에 혜조국사가 수리하였으며, 조선 세종 25년(1443)에 김방이 다시 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1년(1609)에 짓고,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백전은 대웅전의 뒤편에 세워진 법당으로, 현재 무등산에 남아 있는 절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오백나한과 10대 제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 고장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이다.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절은 전남지방에서는 증심사가 유일한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는 증심사는 9세기 중엽에 철감선사가 지었다. 고려 선종 10년(1094)에 혜조국사가 수리하였으며, 조선 세종 25년(1443)에 김방이 다시 지었다. 그 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1년(1609)에 짓고,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백전은 대웅전의 뒤편에 세워진 법당으로, 현재 무등산에 남아 있는 절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오백나한과 10대 제자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 고장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양식이다.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절은 전남지방에서는 증심사가 유일한 것이어서 더욱 귀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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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광주 동구 문화정보과 062-608-2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