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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

논현포대 (論峴砲臺)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근대정치국방 / 국방
수량/면적 2좌 / 1,826㎡
지정(등록)일 1982.03.02
소 재 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호구포로 203-31 (논현동, 논현포대근린공원)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인천광역시 남동구청 
관리자(관리단체) 남동구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남동구 문화체육과 032-453-2132~4

논현포대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을 겪고 나서 경기 연안의 방어시설을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의 명을 받은 어영대장 신정희(申正熙)와 강화유수 이경하(李景夏)가 경기 연안의 군사시설을 확충하면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서양인들의 배를 막기 위해 1879년에 구축한 것이다. 축조당시의 명칭은 호구포대였으난 현재는 논현포대로 부르고 있다. 축조된 후 인근에 설치되어 있던 묘도포대, 제물포대 등과 함께 화도진(花島鎭)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894년 화도진이 철폐되면서 이 포대도 폐쇄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포대가 원래 몇 개의 포좌(砲座)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현재는 2개의 포좌 만이 남아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논현포대의 축조 형식은 각 포좌의 아랫 부분에 잡석을 깔고 중단과 상단에는 어느 정도 다듬은 장대석을 쌓았으며 그런 다음 그 위에 봉토를 하여 마무리하였다. 또한, 지형 여건상으로 미루어 보아 각 포좌에는 이동식 중포 2문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논현포대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을 겪고 나서 경기 연안의 방어시설을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의 명을 받은 어영대장 신정희(申正熙)와 강화유수 이경하(李景夏)가 경기 연안의 군사시설을 확충하면서 인천으로 들어오는 서양인들의 배를 막기 위해 1879년에 구축한 것이다. 축조당시의 명칭은 호구포대였으난 현재는 논현포대로 부르고 있다. 축조된 후 인근에 설치되어 있던 묘도포대, 제물포대 등과 함께 화도진(花島鎭)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1894년 화도진이 철폐되면서 이 포대도 폐쇄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포대가 원래 몇 개의 포좌(砲座)로 이루어져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현재는 2개의 포좌 만이 남아 옛 모습을 전하고 있다. 논현포대의 축조 형식은 각 포좌의 아랫 부분에 잡석을 깔고 중단과 상단에는 어느 정도 다듬은 장대석을 쌓았으며 그런 다음 그 위에 봉토를 하여 마무리하였다. 또한, 지형 여건상으로 미루어 보아 각 포좌에는 이동식 중포 2문이 설치되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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