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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제281호

예산 수당고택 (禮山 修堂古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일곽
지정(등록)일 2014.02.25
소 재 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181-8 (상항리, 이남규선생고택)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이문원
관리자(관리단체)  

수당고택은 아계 이산해(1539~1609)의 손자 이구(1586~1609)의 부인 전주이씨(1588~1668)가 아계의 묘소 근처인 현재의 곳에 1637년 창건하였으며, 1846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배치 및 평면구성에서 이 지역 반가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당 이남규(1855-1907) 등 4대 충절인물 배출하는 등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

17세기 이후 생성된 다량의 고문서와 집안 유물들은 수당가의 변화와 조선후기 사회경제 상황의 실제를 잘 보여주는 등 사회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Sudang Historic House was built in 1637 and underwent major renovation work in 1846. The layout of the house, particularly the men’s quarters (sarangchae) and the women’s quarters (anchae), is a fine example of the type of house occupied by local aristocratic families. The house has gained a reputation not only for its architectural merit but also for the fact that it produced four patriots, including Yi Nam-gyu (pen-name: Sudang, 1855-1907),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The house also boasts a large collection of ancient books and household articles produced since the seventeenth century, constituting a valuable source of knowledge about the changes the house has undergone and the economy and lifestyle of local aristocratic families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修堂古宅是1637年由鹅溪李山海(1539~1609)之孙李久(1586~1609)的夫人——全州李氏(1588~1668)在鹅溪墓地附近(现在的位置)所建, 1846年经过重修后一直延续至今。 厢房和堂屋的布局及平面构成很好地保存着此地区两班家庭的特征,经过韩末和日本统治时期,涌现出修堂李南圭(1855-1907)等4大忠烈人物等,建筑、历史价值极高。 17世纪以后形成的大量古文书及家中的文物极好地展现了修堂家门的变化与朝鲜后期社会经济的实际面貌等,社会文化、学术价值极高。

修堂古宅は、鵝渓・李山海(イ・サンヘ、1539~1609)の孫である李久(イ・グ、1586~1609)の婦人・全州李氏(1588~1668)が、鵝渓の墓所の近くである現在の位置に1637年に建造したものである。1846年の建て直しの後、現在に至っている。 サランチェ(客棟)と母屋の配置および平面構成にはこの地域の両班家の特徴が如実に現れており、大韓帝国と日本の植民地時代を経て修堂・李南珪(イ・ナムギュ、1855~1907)等、忠節を守った4人の人物を輩出するなど、建築的・歴史的に高い価値を有する。 17世紀以降作成された多くの文書と代々受け継がれてきた遺物は、修堂家の変化と朝鮮後期の社会・経済の状況を知る上で重要な資料となるという評価を得ており、社会文化的・学術的に高い価値を有する。

수당고택은 아계 이산해(1539~1609)의 손자 이구(1586~1609)의 부인 전주이씨(1588~1668)가 아계의 묘소 근처인 현재의 곳에 1637년 창건하였으며, 1846년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배치 및 평면구성에서 이 지역 반가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당 이남규(1855-1907) 등 4대 충절인물 배출하는 등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

17세기 이후 생성된 다량의 고문서와 집안 유물들은 수당가의 변화와 조선후기 사회경제 상황의 실제를 잘 보여주는 등 사회문화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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