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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제104호

달성 삼가헌 고택 (達城 三可軒 古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0필지/2,453㎡
지정(등록)일 1979.12.31
소 재 지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동4길 15 (묘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삼가헌보존회
관리자(관리단체) 삼가헌보존회

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 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The area of Myo-dong, Habin-myeon, Dalseong-gun is the hometown of the Bak Family from the Suncheon Clan where the descendants of Bak Paeng-nyeon (1417∼1456), one of the Six Martyred Ministers during the Joseon Dynasty, had settled. Samgaheon House is located near a low mountain bordering the town. The name Samgaheon originates in Zhongyong, one of the four Principal books by Confucius. Initially, a thatched roof house was built on the current residential site by Bak Seong-su, who was an 11th-generation descendant of Bak Paeng-nyeon, and named Samgaheon, which was his penname. Later, in 1783, his son Bak Gwang-seok moved from its neighboring village, Myogol. In 1826, he dismantled the thatched house and built the anchae (women’s quarters) and sarangchae (men’s quarters) on the site. In 1874, Bak Gyu-hyeon, a grandson of Bak Gwang-seok, built a pond and byeoldang (separate building) named Hayeopjeong Pavilion, which means a pavilion of lotus leaves. Hayeopjeong Pavilion originally had a linear layout measuring 4kan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later, however, numaru (wood-floored veranda with railing) was added in front. A single log bridge to the island was placed. The byeoldang was originally used as a village school. The anchae measures 6kan on the front and has a wood-floored veranda. It was burnt down in April 2009 and rebuilt. On the whole, this house maintains the feature of a house of an aristocrat during the mid-Joseon Dynasty.

坐落在忠正公朴彭年(1417∼1456)的子孙落户的朴氏村卯谷旁边一座低矮的山角下的朝鲜时代民宅。房屋占地面积宽阔,设有大门间、舍廊、里间、别堂、池塘等。忠正公的11代孙三可轩朴性洙于英祖45年(1769)建盖舍廊,在里面悬挂了写有本人号的匾额并取名为‘三可轩’。翌年,在三可轩西侧建盖了别堂,并在周围和池塘种植了菊花和荷花,然后取名为‘荷叶亭’。进入大门后会看见舍廊,经过舍廊会出现里间。里间和舍廊大体上呈开口的'ㅁ'字形平面结构,里间和中门间和仓库连接。舍廊呈'ㄱ'字形,内有宽阔的大厅和带小房的火炕房2间、地板房、仆人房。里间呈'ㄷ'字形,内设厨房、里屋、大厅、对面房、敞开的檐廊等。舍廊和里间之间的西侧有酱缸台、仓库、厕所。原来当书斋来使用的别堂于高宗11年(1874)改建成了现在的模样。这座别堂是位于里间西侧的'ㄱ'字形建筑物,由火炕房三间和地板房1间间组成。左侧末端房间的前面有1间的阁楼地板,旁边的地板和别的房间前面设有檐廊。从整体上看存留着朝鲜中期建筑的地方两班住宅的特点,是具有代表性的房屋。指定当时的名称是‘妙洞朴烨氏家屋',后来从死六臣朴彭年的12代孙朴光锡旁边的卯谷分家后,在此建盖了房屋,并根据父亲的号取名为‘三可轩’,因此将指定名称改为了‘达城三可轩’。(2007.1.29)

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 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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