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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제5호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1필지/지정구역 8,399㎡, 보호구역 14,970㎡
지정(등록)일 1967.04.20
소 재 지 강원 강릉시 운정길 63 (운정동)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이강륭
관리자(관리단체) 이강백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선교리)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붙였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 하에 전체가 건축된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점차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안채는 이내번이 1700년대에 처음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여느 상류 주택과 같이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공간이었므로 (안채의) 부엌 공간을 크게 하였으며 집의 규모에 비하여 소박하고 민가적인 풍취를 나타내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ㄱ'자형 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었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이후(李厚)가 순조 15년(1815)에 지었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 (안, 옆, 위)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한꺼번에 모든 건물을 짓지 않은 까닭에 통일감과 짜임새는 조금 결여되어 있으나,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Seongyojang was the house of a high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The name Seongyojang originates from Seongyo-ri, the former name of the village in which this house is located, meaning “pontoon bridge village.” The house comprises the anchae (women’s quarters), sarangchae (men’s quarters), haengnangchae (servants’ quarters), detached quarters, and a pavilion. The women’s quarters was built before 1700 by Yi Nae-beon and the eastern detached quarters was built in 1920 by Yi Geun-u. Yeolhwadang, the men’s quarters, was built by Yi Hu in 1815 (the 15th year of King Sunjo’s reign). The western detached quarters used to stand between the women’s quarters and Yeolhwadang, and served as a family library. Hwallaejeong, a pavilion located beside the artificial pond outside the gate, was built one year after Yeolhwadang. It is designed such that part of the floor protrudes towards the pond, supported by stone pillars driven into the pond. Several household tools which belonged to this house constitute a good resource for studies of life in the Joseon Period.

朝鲜时代士大夫的住房。全州人李乃蕃移居此地时修建的房屋,据说因为房屋地形让人联想起船头,所以起了‘船桥庄’的名称。由里间、舍廊、行廊、别堂、亭子等组成,作为民房可以说其结构完整无缺。1700年以前修建的里间由李乃蕃所造,在船桥庄里的建筑物当中最具庶民性。与里间的右侧相连的主人专用别堂建筑物-东别堂是李根宇于1920年修建的‘ㄱ'字形建筑物。悦话堂是舍廊房,于纯祖15年(1815)由李厚修建,据传取名自陶渊明的《归去来诗》。如今虽然已经消失,但是过去里间和悦话堂之间曾有作为书斋兼书库来使用的西别堂。位于大门外庭院南面的人工池塘边的活来亭是修建悦话堂的第二年修建的。用石柱支撑的地板弯向河塘,是呈ㄱ字形的阁楼型建筑物。整体上这座房子以山脚为背景,均匀适当地布置了几个独立的建筑物,而且每个建筑物的结构也比较简朴,与屋外的活来亭自然谐调,显露着雍容大气的格调。并且所收藏的各种家庭用品是了解过去江陵地区人们生活习惯的珍贵资料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다. 전주사람인 이내번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으로,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을 때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선교리)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붙였다. 안채·사랑채·행랑채·별당·정자 등 민가로서는 거의 모자람이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계획 하에 전체가 건축된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점차 증축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안채는 이내번이 1700년대에 처음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의 여느 상류 주택과 같이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던 공간이었므로 (안채의) 부엌 공간을 크게 하였으며 집의 규모에 비하여 소박하고 민가적인 풍취를 나타내고 있다.

안채의 오른쪽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주인전용의 별당건물인 동별당은 'ㄱ'자형 건물로 이근우가 1920년에 지었다. 사랑채인 열화당은 이후(李厚)가 순조 15년(1815)에 지었으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안채와 열화당 사이에는 서재 겸 서고로 사용되던 서별당이 있었다. 대문 밖 바깥마당의 남쪽으로 위치한 넓은 인공연못 (안, 옆, 위)에 서 있는 활래정은 열화당을 세운 다음해에 지었다.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마루가 연못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누각형식의 'ㄱ'자형 건물이다.

한꺼번에 모든 건물을 짓지 않은 까닭에 통일감과 짜임새는 조금 결여되어 있으나,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독립된 건물들을 적당히 배치하고 각 건물의 구조도 소박하게 처리함으로써, 자유스럽고 너그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또한 소장하고 있는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날 강릉지방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알아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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