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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 (粧刀匠)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무형문화재 / 전통기술 / 공예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1978.02.23
소 재 지 전라남도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일상생활이나 호신용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 양반 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휴대했다. 조선 후기부터는 장도가 몸단장을 하는 노리개로서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정교하게 발달하였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한다. 장도는 모양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칼집장식이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뉘는데,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그 외에도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부르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낙죽장도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칼로서 일반 은장도와 달리 선비의 칼로 알려졌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하며 종류 또한 다양하여 한국적 우아함과 장식용으로 뛰어난 공예미를 나타내고 있다. 각종 재료를 사용하는 장도의 제작기법은 조선시대의 우수하고 다양한 공예기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Jangdojang refers to the skill of making decorative daggers, or to an artisan with such a skill. Since the Goryeo Period (877 – 1394), people, men and women alike, carried jangdo (ornamental knife) to protect themselves or as an accessory. Follow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 – 1598) women of noble families regarded jangdo as an essential item to be carried by them to protect themselves. Toward the late Joseon Period (1392 –1910), jangdo became a luxury accessory. Jangdo was made of gold, silver or white jade. Scholars liked to carry jangdo displaying their favorite phrase inscribed with a heated iron. Jangdo were mainly made in Seoul, Ulsan, Yeongju, and Namwon. Those made in Gwangyang, Jeollanam-do are known for their uniquely Korean gracefulness. Jangdo made of diverse materials display also the diverse handicraft techniques of the Joseon Period.

粧刀是随身携带的小刀,用于日常生活、护身或饰物。粧刀匠是指制作粧刀的技能与技工。从高丽时代起成人男女都携带粧刀护身,尤其是朝鲜时代壬辰倭乱以后,粧刀成了士大夫两班家门妇女保护纯洁用的必备物品。粧刀从朝鲜后期起成为饰品、奢侈品,制作过程非常精巧复杂。粧刀的产地以首尔为中心,有蔚山、荣州、南原等地,其中全罗南道光阳地区的粧刀历史最为悠久,做工精细,种类繁多,展现了韩国的优雅与装饰上的工艺美。通过粧刀的制作方法可了解到朝鲜时代优秀的工艺手法,极其重要,现已被指定为重要的无形文化财。由技能保有者全南光阳的朴龙奇(粧刀)、全南谷城的韩炳文(烙竹匠)传承。

粧刀とは身に付ける小さな刀のことで、日常生活や護身用または装身具として使われ、粧刀を作る技術及びその技術を持った人を粧刀匠という。粧刀は高麗時代から成人の男性・女性が護身用として持ち、特に朝鮮時代の壬辰倭乱以降からは士大夫両班の婦女子たちが純潔を守るために必ず携帯した。朝鮮時代後期からは、粧刀が身繕いをするノリゲ(飾り物)として一種の贅沢品であったため、製作過程が発達して精巧な粧刀が生まれるようになった。粧刀はソウルを中心にして蔚山・栄州・南原などで多く作られた。その中でも全羅南道光陽地域の粧刀の歴史が深く、繊細な形で種類も多いため、韓国的な優雅さと格調を備え、装飾用としても優れた工芸美を現わしている。様々な材料を使う粧刀の製作技法は、朝鮮時代における優れた多様な工芸技法を現しており、その重要性が認められて重要無形文化財に指定され、保護されている。このような粧刀匠製作技術の技能保持者としては全羅南道光陽の朴龍基氏(粧刀)、全羅南道谷城の韓炳文氏(烙竹粧刀)がその命脈を継いでいる。

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장도장이라 한다. 장도는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칼로 일상생활이나 호신용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부터 성인 남녀들이 호신용으로 지니고 다녔으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대부 양반 가문의 부녀자들이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휴대했다. 조선 후기부터는 장도가 몸단장을 하는 노리개로서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제작과정이 정교하게 발달하였다.

장도 중에서 몸에 차는 것을 패도(佩刀)라 하고, 주머니 속에 넣는 것을 낭도(囊刀)라고 한다. 장도는 모양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칼집장식이 복잡한 갖은 장식과 단순한 맞배기로 나뉘는데, 맞배기에는 칼집이 원통형인 평맞배기와 을(乙)자형인 을자맞배기가 있다. 그 외에도 칼집이 사각형이면 사모장도, 팔각이면 모잽이장도라 부르고, 재료에 따라 금장도, 은장도, 백옥장도 등으로 부른다. 낙죽장도는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선비들이 좋아하는 시문을 새긴 칼로서 일반 은장도와 달리 선비의 칼로 알려졌다.

장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울산·영주·남원 등지에서 많이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전라남도 광양지방의 장도가 역사가 깊고 섬세하며 종류 또한 다양하여 한국적 우아함과 장식용으로 뛰어난 공예미를 나타내고 있다. 각종 재료를 사용하는 장도의 제작기법은 조선시대의 우수하고 다양한 공예기법을 잘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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