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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107호

광주 환벽당 일원 (光州 環碧堂 一圓)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명승
수량/면적 26,832㎡
지정(등록)일 2013.11.06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387-0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리자(관리단체) 광주광역시 북구청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Built by Kim Yun-je (pen-name: Sachon, 1501-1572), a Neo-Confucian scholar of the early Joseon Period, with the aim of spending his final years in a peaceful natural environment educating local youths, Hwanbyeokdang Pavilion houses a study room on one side of the building, displaying a unique architectural element established through the pavilions built in the southwestern part of Korea. The pavilion is located near Wonhyogyegok Valley of Mudeungsan Mountain; down in the valley is a beautiful crape myrtle grove called Jamitan (Crape Myrtle Rapids) on one side of Jeungamcheon River. The area around the pavilion, including Wonhyogyegok Valley, creates fascinating landscapes whose beauty has been widely praised among the men of letters visiting it. About 200 meters north of Hwanbyeokdang is a village called Chunghyo Village where Kim Yun-je spent his last years; beyond Jeungamcheon Stream is Jisil Village, which once housed the home of Jeong Cheol (pen-name: Songgang, 1536-1593), an eminent Neo-Confucian scholar-statesman of the mid-Joseon Period. Other attractions contributing to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pavilion include a fishing place where the two historic figures, Sachon and Songgang, first met, a waterfall with a pool under it, and a pair of pine trees. According to Song Sun (pen-name: Myeonangjeong, 1493-1583), who wrote in 1563 -- three years after the completion of Sigyeongjeong Pavilion by Kim Seong-won (pen-name: Seohadang, 1525-1597) -- a poem with rhymes taken from a poem hung in the pavilion, Hwanbyeokdang and Sigyeongjeong were like brothers. Together with Soswaewon Garden, the two formed “the three great attractions in one valley (i.e., Jeungamcheon Stream).” As the name Hwanbyeok (literally “loop of the blue”) suggests, the pavilion is surrounded by breathtakingly beautiful scenes of nature and connected with a wealth of literary heritage created during the Joseon Period. It is also a fine example of the local tradition of the Honam region wherein pavilions are located in the midst of nature rather than in a residential area. Specifically, Hwanbyeokdang Pavilion is located 200 meters south from Chunghyo Village where Kim Yun-je was born, on a ridge running northward from the summit of Mudeungsan Mountain and linking Bukbong Peak and Kkomakjae Pass. Mountains including Mudeungsan in the south and Seongsan in the north -- with Jeungamcheon River flowing between Gwangju and Damyang – constitute the fascinating natural spectacle around the site. Around Hwanbyeokdang Pavilion are historic villages connected with renowned men of letters such as Chunghyo, Jisil, and Changam Villages, which once housed the homes of Kim Yun-je, Jeong Cheol, and Yang San-bo (pen-name: Soswaegong, 1503-1557), respectively, and historic pavilions such as Sigyeongjeong, Myeonangjeong, Songgangjeong, Doksujeong, Soswaewon, and Hwanbyeokdang. The village and pavilions show that the area around Hwanbyeokdang had been a center of the tradition of private wooded gardens established during the Joseon Period. Hwanbyeokdang Pavilion is connected with a group of renowned literati elites of the Joseon Period, such as Song Sun, Im Eok-ryeong, Yang San-bo, Kim In-hu, Kim Seong-won, Kim Dae-seung, and Go Gyeong-myeong who regularly visited it to pay homage to the natural scenic beauty surrounding it through their poetic works. The beauty of the pavilion in the early stage was depicted by So Se-yang (1486-1562) in his poem “Hwanbyeokdang”; the plants growing in the garden around the pavilion in the early 18th century were mentioned by Kim Chang-heup (pen-name: Samyeon, 1653-1722) in his book Namyu ilgi (Diary of a Journey to the South). A scene of its natural surroundings is also captured by the drawing Seongsan gyeryu tagyeoldo (Coping with Summer Heat at the Valley of Seongsan Mountain) contained in Seohadang yugo (Posthumous Manuscripts of Seohadang), a collection of writings by Kim Seong-won (1525-1597), a Neo-Confucian scholar-statesman of the mid-Joseon Period. The cultural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Hwanbyeokdang Pavilion has been increased further by an abundance of poetic works written by well-known men of letters: Im Eok-ryeong, Gi Dae-seung, Song Sun, Kim In-hu, So Se-yang, Jeong Cheol, Baek Gwang-hun, Go Gyeong-myeong, Gwon Pil-do, Jeong Hong-myeong, Mok Jang-heum, Yi Eun-sang, Yi Ha-gon, Yi Myeong-han, Kim Chang-heup, Jo Sang-geon, Yang Gyeong-ji, Jeong Min-ha, and Seo Bong-ryeong.

环碧堂是沙村金允悌(1501~1572)老年时为与自然为伴,培养后辈人才而修建的南道地方典型的“有室形”亭子。附近有无等山元晓溪谷的溪流在流淌,溪谷下方的甑岩川周边有紫薇树形成的壮观景象,被称作紫薇滩。这里是无等山等沿着元晓溪谷的溪流所形成的自然景色秀丽的地区,自古就是有许多诗人墨客常往的名胜之地。 距环碧堂北侧200米有沙村金允悌曾生活过的忠孝村,甑岩川那边有松江郑澈生活过的芝室村,环碧堂下有传说为松江和沙村初次相见之地的钓台和龙沼、双松,历史价值极高。 俛仰亭宋纯和栖霞堂金成远修建了息影亭,3年后(1563年)与息影亭的诗和韵,称“息影亭与环碧堂”为兄弟之亭,潇洒园和息影亭、环碧堂为一洞(甑岩川)之内三处名胜,称为一洞之三胜。 环碧堂有环璧之意,正如其名字一样,形成了绿环环绕的优美自然景观,在与诗歌文学有关的国文学史上具有极高的人文学价值,同时作为别墅园林也价值极高,展现了湖南的代表性楼亭文化。 环碧堂所在之处为无等山的北侧山脊,是经过北峰通往泥蚶岭的众多支脉之一,位于沙村金允悌(1501-1572)出生的忠孝村北侧200米处。此外,隔着作为光州和潭阳分界线的甑岩川(别名:紫薇滩),南侧的无等山到北侧星山之间的山峰展现了一幅全景景观,蔚为仙境。 环碧堂周边有沙村金允悌生活过的忠孝村和松江郑澈生活过的芝室村、潇洒公梁山甫生活过的苍岩村,这些村子周边分布着息影亭和俛仰亭、松江亭、用来隐居的独守亭和潇洒园、环碧堂等10余座亭子,这一带作为朝鲜时代园林文化的中心地区具有极高的价值。 环碧堂是宋纯、林亿龄、梁山甫、金麟厚、金成远、奇大承、高敬命等当时的最高学者们经常出入的地方,他们在这里欣赏秀丽的自然景观,创作诗文与歌辞,达到了风流文化的极致。其作为朝鲜时代士林文化的中心具有很高的历史文化价值。 环碧堂的早期面貌通过苏世让(1486~1562)所作的《环碧堂》诗文可以得知;通过三渊金昌翕 (1653~1722)的《南游日记》可以了解到当时园林中的植物和绿化树种。金成远(1525~1597)的《栖霞堂遗稿》中留下了《星山溪柳濯热图》等图画,具有人文学价值。 与环碧堂有关的诗文,有作为当时一流文学家的林亿龄、奇大承、宋纯、金麟厚、苏世让、郑澈、白光勋、高敬命、权弼度、郑弘溟、睦长钦、李殷相、李夏坤、李明汉、金昌翕、赵尚健、梁敬之、郑敏河、徐凤翎等诗人墨客的诗歌流传下来,具有人文学价值。

環碧堂は沙村・金允悌(キム・ユンジェ、1501~1572)が引退後に自然と親しみ、後学を養成する目的で建設した南道地域の典型的な有室型の亭である。近くには無等山(ムドゥンサン)元暁渓谷の渓流が流れ、渓流の下には甑岩川周辺にサルスベリが美しい景観を形成しているので、「紫薇灘」と呼ばれている。とくに、ここは無等山をはじめとする元暁渓谷の稜線が美しく、その自然を堪能するために文人墨客が多訪れた名勝地である。 環碧堂から200メートル北には沙村・金允悌の住んでいた忠孝村が、甑岩川の向こうには松江・鄭澈の住んでいた智実村があり、環碧堂の南には松江と沙村がはじめて出会ったという言われる釣台と滝壷、双松があるなど、歴史的価値を有する。 俛仰亭・宋純(ソン・スン)は棲霞堂・金成遠(キム・ソンウォン)が息影亭を建設して3年後の1563年、息影亭の詩から次韻をして「息影亭と環碧堂」を兄弟のような亭だとし、瀟灑園、息影亭、環碧堂は「一洞之三勝」、つまり一つの地域(甑岩川)に三つの名勝があると表現した。 「環碧」は碧が環のように囲っている美しい場所だという意味であり、環碧堂は詩歌文学と関連のある国文学史としての人文学的価値を有し、「別墅・園林」として湖南(ホナム)地域を代表する楼閣と亭の文化を示す素晴らしい場所である。 環碧堂の位置する無等山の北陵から北峰を経てコマクジェへと続く支脈があり、沙村・金允悌(1501~1572)の生まれた忠孝村の200m南にある。また、光州(クァンジュ)と潭陽(タミャン)の境界となる甑岩川(またの名を紫薇灘という)を間に、南の無等山から北の星山(ソンサン)に至るまで、山々がパノラマの景観を見せている。 環碧堂周辺には沙村・金允悌が住んでいた忠孝村、松江・鄭澈の住んでいた智実村、瀟灑公・梁山甫が住んでいた蒼岩村があり、これらの村の周辺には息影亭、俛仰亭、松江亭、隠居のために建てられた独守亭、瀟灑園、環碧堂など約10の亭が散在している。したがって、この一帯が朝鮮時代の園林文化の中心であったことが分かり、高い価値を有する。 環碧堂は当時最高の碩学だった宋純、林億齢、梁山甫、金麟厚、金成遠、奇大升、高敬命などが訪れた場所であり、秀麗な自然景観を鑑賞し、詩文と歌辞を制作するなど、風流文化が栄えるなど、朝鮮時代の士林文化の中心だったという歴史文化的価値を有する。 環碧堂の初期の姿は、蘇世讓(1486~1562)の詩「環碧堂」から推察することができる。さらに、三淵・金昌翕(1653~1722)の『南遊日記』により、当時の園林の植物や造園の樹種を推定することができる。また、金成遠((1525〜1597)の『棲霞堂遺稿』には「星山渓柳濯熱図」などの絵が描かれており、人文学的価値を有する。 環碧堂関連の詩文は、当時の一流の文人である林億齢、奇大升、宋純、金麟厚、蘇世讓、鄭澈、白光勲、高敬命、権弼度、鄭弘溟、睦長欽、李殷相、李夏坤、李明漢、金昌翕、趙尚健、楊敬之、鄭敏河、徐鳳翎などの文人墨客の作品が伝わっており、人文学的価値を有する。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沙村金允悌, 1501~1572)가 노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한 남도지방의 전형적인 유실형(有室形)정자로 가까이에는 무등산 원효계곡의 계류가 흐르며 계곡아래 증암천(甑巖川) 주변에는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뤄 자미탄(紫薇灘)이라 불렀으며, 특히 이곳은 무등산을 비롯한 원효계곡의 줄기를 따라 자연 풍광이 수려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명승지였다.

환벽당 북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곳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증암천 너머에는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이 있으며 환벽당 아래에는 송강과 사촌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釣臺)와 용소(龍沼), 쌍송(雙松)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면앙정 송순은 서하당 김성원이 식영정을 건립하고 3년이 지난 뒤 1563년 식영정의 시를 차운하며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의 정자라고 하면서, 소쇄원과 식영정, 환벽당을 가리켜 한 동(증암천)안에 세 명승 즉, 一洞之三勝이라 말한다.

환벽당은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이 위치한 곳은 무등산 북능의 능선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가지 지맥 중의 하나이며, 사촌 김윤제(1501-1572)가 태어난 충효마을 남쪽 200m지점에 있다. 또한 광주와 담양을 경계로 흐르는 증암천(별칭 : 자미탄)을 사이에 두고 남쪽 무등산에서 북쪽 성산에 이르기까지 산들이 고르게 파노라마 경관을 보여주는 선경을 이루고 있다.

환벽당 주변에는 사촌 김윤제가 살았던 충효마을과 송강 정철이 살았던 지실마을, 소쇄공 양산보가 살았던 창암촌이 있으며, 이 마을들 주변으로 식영정(息影亭)과 면앙정(俛x仰亭), 송강정(松江亭), 은거를 위한 독수정(獨守亭)과 소쇄원(瀟灑園), 환벽당(環碧堂) 등 10여개 정자가 소재해 있어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지역으로서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인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이 드나들던 곳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시문과 가사를 지으며 풍류 문화의 극치를 이룬 조선시대 사림문화의 중심으로서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

환벽당의 초기모습은 소세양(1486~1562)이 지은 “환벽당“시를 통해서 알 수 있으며, 삼연 김창흡(三淵金昌翕 1653~1722)의 『南遊日記』를 통해 그 당시의 원림의 식물상과 조경수종을 짐작할 수 있고, 김성원((1525~1597)의 “서하당유고“ 에 ”성산계류탁열도”등의 그림이 남아있어 인문적 가치가 있다.

환벽당 관련 시·문은 당대의 일류 문인들로서 임억령, 기대승, 송순, 김인후, 소세양, 정철, 백광훈, 고경명, 권필도, 정홍명, 목장흠, 이은상, 이하곤, 이명한, 김창흡, 조상건, 양경지, 정민하, 서봉령 등 시인묵객의 시가가 전해져 인문학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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