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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21호

공주고마나루 (公州고마나루)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명승
수량/면적 889,306㎡
지정(등록)일 2006.12.04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건설교통부 외
관리자(관리단체) 공주시

공주 고마나루는 공주지역 금강 및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전개되는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이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썼다. 고마나루를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 천도 시 이용하였던 교통로였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또한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터이자 수상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이곳에는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현재 고마나루 북쪽에 솟은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주의 마을 솔밭이 금강 및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This ferry landing is the origin of present-day Gongju, once the capital of the Baekje Kingdom (18 B.C. - A.D. 660). The ferry grounds extend from the Geumgang riverside area to the low hillocks of Yeonmisan Mountain situated to the west of the Tomb of King Muryeong (r. 501-523). Goma, an archaic Korean word for “bear,” was transcribed into Chinese characters as Ungjin, which literally means “bear ferry.” The region was known as Ungcheonju during the reign of King Sinmun (r. 681-692) and renamed U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r. 742-765) of Unified Silla. It was given its present name, Gongju, in 940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 founder of the Goryeo Dynasty. The area was the major transportation route favored by King Munju of Baekje when he moved the capital southward to this area in 475. It was also the gateway for sea routes to China and Japan. In 660, the allied forces of Silla and Tang led by the Chinese general Su Dingfang advanced upstream along the Geumgang River and camped here prior to attacking Baekje. After conquering Baekje, they set up the Ungjindan Altar at this spot. The altar was used during successive dynasties from Baekje to Joseon (1392-1910) for rites to appease the water gods. The ruins of the altar still remain. A famous cave overlooks the ferry landing from the mid-slope of Yeonmisan Mountain. A beautiful but sad legend has it that a virgin bear that lived in the cave fell in love with a woodcutter. A shrine was built near the ferry landing and rites were performed there to relieve the poor bear spirit of her lovesickness and pray for peace in the neighborhood. Once the center stage of Baekje history and a time-old base where the local population made their living, Gomanaru Ferry is also renowned for its outstanding natural scenery. The broad sandy beach along the river and a village grove of some 450 pine trees create a delightful scene against the backdrop of Yeonmisan Mountain.

公州熊津由向公州地区锦江、燕尾山等向武宁王陵西侧延伸的地势低缓的丘陵地带与锦江边的熊津一带组成,是公州的发源地,也是留传着熊人传说的历史名城。熊津是百济文周王迁都熊津时使用的交通要道,660年罗唐联合军的唐朝将军苏定方为了攻打百济,沿锦江逆流而上并在此安营扎寨;百济灭亡后还设立了熊津都督府。此处既是百济历史的中心舞台,也是国际交通的枢纽。熊津是百济历史的中心,具有极高的历史价值,与锦江江畔宽广的沙滩、450多棵村庄松林、锦江及燕尾山形成了美丽景观,被评为历史文化性、景观性价值卓越的游览胜地。

公州固麻渡し場は、公州地域の錦江、燕尾山を含んだ武寧王陵の西側に広がる低い丘陵地と錦江辺の渡し場一帯のことで、公州の胎動地でありながら熊と人間にまつわる伝説が伝わる由緒深い名勝地である。ここは百済の文周王が熊津に遷都した時に利用した交通路で、660年の羅唐連合軍の唐の将軍・蘇定方が百済攻撃のために錦江を上って来て駐屯し、百済が滅んだ後には熊津都督府を設けた所で、百済の歴史の中心的な舞台でもあり、国際的な交通の関門でもあった。固麻渡し場は百済歴史の中心的な所で、歴史的な価値が大きいだけでなく、錦江辺に広く広がった砂浜と450余株の松林が錦江及び燕尾山と共に調和して、美しい景観を醸し出している所であり、歴史文化的・景観的価値が優れた景勝地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

공주 고마나루는 공주지역 금강 및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전개되는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이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썼다. 고마나루를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 천도 시 이용하였던 교통로였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또한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터이자 수상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이곳에는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현재 고마나루 북쪽에 솟은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주의 마을 솔밭이 금강 및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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