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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532호

상주 옥동서원 (尙州 玉洞書院)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4,545㎡
지정(등록)일 2015.11.10
소 재 지 경상북도 상주시 수봉2길 29 (모동면)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옥동서원
관리자(관리단체) 옥동서원

상주 옥동서원은 고려 말 3명의 국왕과 조선 초 4명의 국왕을 모신 충신으로 조선 초 유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교 숭상 정책을 주도하였던 대표적인 인물인 방촌 황희 (尨村 黃喜, 1363∼1452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옥동서원은 1518년 횡당(黌堂)을 세워 황희의 영정을 모신 것이 효시로, 1580년 백옥동 영당(白玉洞 影堂)이 건립되면서 황희를 배향(配享, 신주를 모심)하였다. 171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전식(全湜, 1563~1642년)을 배향하였으며, 1786년 황효헌(黃孝獻, 1491~1532년)과 황뉴(黃紐, 1578~1626년)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789년에는 조정으로부터 현재의 명칭인 ‘옥동서원’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옥동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황희를 모신 서원으로는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황희 등 4현(황희‧전식‧ 황효헌‧황뉴)의 향사(享祀, 제사)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옥동서원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인 문루(門樓, 청월루), 강당(講堂, 온휘당), 사당 (祠堂, 경덕사)은 일직선 상에 놓여 있으며,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없고 지원 시설들도 비교적 적다. 이러한 점은 강학(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 기능이 약화되고 향사 기능이 점차 강화되던 17~18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옥동서원은 황희 선생 영정 3점,「방촌선생문집」,「반간집」,「황씨세보」,「장계이고」,「만오집」등 총 5종 241책의 책판을 비롯하여 각종 고문서 300여 건, 현판 11개 등의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Okdongseowon Confucian Academy in Sangju was built to commemorate Hwang Hui (pen-name: Bangchon, 1363-1452), a royal vassal betwee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s who laid the foundations for Confucianis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 academy received a name plaque from King Jeongjong in 1789 (the 3rd year of his reign). It is one of the forty-seven Confucian academies that survived the decree issued by Heungseon Daewongun requiring the abolition of all Confucian academies and schools in 1871 (the 8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jong). The academy preserves many documentary heritages including three portraits of Hwang Hui, printing blocks of five kinds of 241 books, including the Collection of Bangchon’s Writings, around three hundred ancient documents, and eleven hanging boards. Along with the surrounding historic, cultural, and environmental assets, Okdongseowon Confucian Academy and these records have been well preserved, constituting an invaluable resource for the study of architecture, history, and literature of the early Joseon period.

상주 옥동서원은 고려 말 3명의 국왕과 조선 초 4명의 국왕을 모신 충신으로 조선 초 유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유교 숭상 정책을 주도하였던 대표적인 인물인 방촌 황희 (尨村 黃喜, 1363∼1452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옥동서원은 1518년 횡당(黌堂)을 세워 황희의 영정을 모신 것이 효시로, 1580년 백옥동 영당(白玉洞 影堂)이 건립되면서 황희를 배향(配享, 신주를 모심)하였다. 171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전식(全湜, 1563~1642년)을 배향하였으며, 1786년 황효헌(黃孝獻, 1491~1532년)과 황뉴(黃紐, 1578~1626년)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789년에는 조정으로부터 현재의 명칭인 ‘옥동서원’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옥동서원은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황희를 모신 서원으로는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아 오늘날까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황희 등 4현(황희‧전식‧ 황효헌‧황뉴)의 향사(享祀, 제사)가 전승되어 오고 있다.

옥동서원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인 문루(門樓, 청월루), 강당(講堂, 온휘당), 사당 (祠堂, 경덕사)은 일직선 상에 놓여 있으며,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東齋)· 서재(西齋)가 없고 지원 시설들도 비교적 적다. 이러한 점은 강학(講學, 학문을 닦고 연구함) 기능이 약화되고 향사 기능이 점차 강화되던 17~18세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아울러 옥동서원은 황희 선생 영정 3점,「방촌선생문집」,「반간집」,「황씨세보」,「장계이고」,「만오집」등 총 5종 241책의 책판을 비롯하여 각종 고문서 300여 건, 현판 11개 등의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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