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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87호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西歸浦 金正喜 流配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생활유적
수량/면적 1499㎡
지정(등록)일 2007.10.10
소 재 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일원 (안성리)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관리자(관리단체) 서귀포시

서귀포시 대정읍성 동문자리 안쪽에 자리잡은 추사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

김정희는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으로, 조선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이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다 조선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중국행을 앞두고 안동김씨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 초기에 포도청의 부장인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현재의 유배지로 지정된 강도순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이 집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곳에 머물면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추사유배지는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남긴 유배 문학의 커다란 문화적 가치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금석학과 유학, 서학의 의미는 역사적·학술적으로 크게 평가되고 있다.



※(추사유배지 →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Kim Jeong-hui (1786-1856), a renowned scholar-official, calligrapher and painter during the late years of the Joseon Dynasty, lived here in exile from 1840 to 1848. Kim, widely known by his pen-name Chusa, was a great-grandson of Kim Han-sin, a son-in-law of King Yeongjo. He passed the higher civil service examination in 1819, the 1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unjo, and later served as headmaster of the Seonggyungwan National Academy, and vice minister of personnel affairs. In 1840, the six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jong, he was appointed deputy envoy for the annual winter mission to China but, shortly before embarking on the trip, was banished to the distant island of Jejudo as a result of conflict with the powerful Andong Kim Clan. He lived at the house of the local police chief, Song Gye-sun, for the first few years and then moved to this house, which was officially named his home in exile. Located outside the east gate of the town wall of Daejeong, which is currently in Seogwipo, the house was then owned by a local man named Kang Do-sun. It was burnt down during the civil uprising of 3 April 1948, and rebuilt in 1984 in accordance with the testimony of Kang’s great-grandson. While living in this house, Kim perfected his own calligraphic style, the highly acclaimed Chusache. He also produced a number of literary works and paintings, including Sehando (Winter Scene), and taught many students. In view of his ingenious achievements in the research of ancient Korean epigraphs as bibliographical sources of history, as well as Confucianism and the arts, Kim’s home in exile is held to be of great historical and academic value.

位于西归浦市大静邑城东门址内侧,是朝鲜后期的文臣、书画家秋史金正喜(1786∼1856)度过流放生活的地方。金正喜在此地居留期间完成了秋史体,为后人留下<阮堂岁寒图>(国宝第180号)等很多书画作品。还向济州地方的儒生传授学识与书法等,留下了很多功绩。秋史流配址是秋史金正喜先生留给济州的宝贵文化遗产,金正喜先生留下的金石学、儒学及书学的意义被评价为具有历史•学术重要价值的遗产。

西帰浦市大静邑城の東門の跡の内側にある済州秋史流配地は、朝鮮時代後期の文臣であり書画家であった秋史金正喜(1786~1856)が配流生活をした所である。金正喜はここで生活しながら秋史体を完成し、『阮堂歳寒図』(国宝第180号)をはじめとした多くの書画を描いた。また、済州地域の儒生たちに学問と書道を教えるなど多くの功績を残した。済州秋史流配地は、秋史金正喜先生が済州に残した配流文学としての大きな文化的価値だけでなく、彼が残した金石学と儒学・書学の業績は歴史的・学術的に高く評価されている。

서귀포시 대정읍성 동문자리 안쪽에 자리잡은 추사유배지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다.

김정희는 영조의 사위였던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으로, 조선 순조 19년(1819)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이조참판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러다 조선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동지부사로 임명되어 중국행을 앞두고 안동김씨 세력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유배 초기에 포도청의 부장인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현재의 유배지로 지정된 강도순의 집으로 이사하였다. 이 집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김정희는 이 곳에 머물면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비롯한 많은 서화를 그렸으며, 제주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는 등 많은 공적을 남겼다.

추사유배지는 추사 김정희선생이 제주에 남긴 유배 문학의 커다란 문화적 가치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금석학과 유학, 서학의 의미는 역사적·학술적으로 크게 평가되고 있다.



※(추사유배지 →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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