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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83호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遯巖書院)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64,699㎡
지정(등록)일 1993.10.18
소 재 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임리 74번지 외 5필지 임리 74번지 외 5필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돈암서원
관리자(관리단체)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훌륭한 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던 지방교육기관이며,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하였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썼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

Donamseowon was established to honor the outstanding Confucian scholarship of Kim Jang-saeng (1548-1631) in 1634,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Injo of the Joseon Dynasty. Kim Jang-saeng was a great Confucian scholar who succeeded the scholarship of Yulgok and built the Giho Confucian School. He devoted his life to studying Confucianism and teaching his followers. King Hyeonjong of the Joseon Dynasty himself coined the name of the academy, Donam, and bestowed the big hanging board with the name of the academy on it in 1660. Donamseowon only erected the memorial tablets of Confucian scholars such as Kim Jip, Song Jun-gil, and Song Si-yeol. Quite a few old books have been preserved, including Hwanggang silgi (True Record of Hwanggang), Sagye yugo (Posthumous Works of Kim Jang-saeng), and Sangnyebiyo (Essentials of Funerary Rites); all three books are prose collections of Confucian scholars. Several buildings such as Sau Shrine, Eungdodang Lecture Hall, and Jangpangak (archive for printing woodblocks), Hamabi (stone hitching post), and Songdeokbi (memorial monument) have also been preserved. Donamseowon had survived the royal order of Heungseon Daewongun, father of King Gojong of the Joseon Dynasty, who ordered the abolishment of all Confucian academies but spared 47 important ones because they were very influential traditional local academies that had produced many great Confucian scholars.

遁岩书院是为了纪念金长生(1548∼1631)先生之德,于仁祖12年(1634)所建的书院。书院既是祭祀优秀人物的场所也是培养后学的地方教育机关。金长生是继承栗谷李珥的思想与学识的礼学大师,为学问研究与培养后辈呕心沥血。遁岩书院是在高宗八年(1871)兴宣大院君的书院撤废令后保存至今的47所书院中的一所,是为地方教育做出贡献的传统书院。

遁岩書院は、金長生(1548~1631)の徳を称えるために仁祖12年(1634)に建てられた書院である。書院は優れた人達の祭祀を行い、後学を養成した地方教育機関であり、金長生は栗谷李珥の思想と学問を受け継いだ礼学の大家で、学問研究と後進養成に力を注いだ人物である。この書院は高宗8年(1871)興宣大院君の書院撤廃令の時にも保存された47ヶ所の書院の一つで、地方教育の一翼を担った伝統ある所である。

김장생(1548∼1631) 선생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인조 12년(1634)에 건립한 서원이다. 서원은 훌륭한 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양성하던 지방교육기관이며, 김장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과 학문을 이은 예학의 대가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을 쏟은 인물이다.

원래 김장생의 아버지 김계휘가 경회당을 세워 학문연구에 힘쓰고 이후 김장생이 양성당을 세워 후진양성을 하였다. 후세에 이 경회당과 양성당을 중심으로 서원을 세우고 김장생을 추모하여 후학에 힘썼다. 현종 원년(1660)에 왕이 돈암이라는 현판을 내려주어 사액서원이 되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추가로 모시었다.

이 서원에는 『황강실기』, 『사계유교』, 『상례비요』 등의 서적들이 보존되어 오고 있으며, 사우(祠宇), 응도당, 장판각 등의 건물들과 하마비, 송덕비가 남아 있다.

이 서원은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에도 남아 보존된 47개의 서원중의 하나로,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했던 전통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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