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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24호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 (서울 舊 西大門刑務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근대정치국방 / 기타
수량/면적 28,112㎡
지정(등록)일 1988.02.27
소 재 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시 대 대한제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서울특별시 
관리자(관리단체) 서대문구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이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이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1988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이다.

Gyeongseong Prison was designed and built by the Japanese on Inwangsan Mountain in 1907 in order for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which seized sovereignty of our country, to cement its control over our country. As a wooden building measuring approximately 560 pyeong (about 1.4 m2), it can accommodate about 500 prisoners. About 500 prisoners were moved from Jongno Prison to this place, and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had arrested and imprisoned many fighters for national independence to torture, abuse, and execute them till 1945 as the Independence Year. The increasing number of people imprisoned prompted the Japanese Government to build a prison in Gongdeok-dong, Mapo-gu in 1912, naming it Gyeongseong Prison; the original Gyeongseong Prison was renamed Seodaemun Prison and Seodaemun Criminal Prison in 1923. This prison accommodated 2,890 prisoners in 1944, including girls less than 18 years, prisoners sentenced to jail terms of 10 years or more, and those with life sentences; Martyr Yu Gwan-sun died for national independence here. It was renamed Gyeongseong, and then Seoul Criminal Prison in 1946 immediately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and the pro-Japanese group and those who betrayed the country were put in prison. It was renamed Seoul Prison in 1961, and then Seoul Detention House in 1967. Many activists were imprisoned here in relation to political situations such as 4.19 Revolution, 5.16 Military Coup, etc. It was moved to Uiwang-si, Gyeonggi-do in 1987 and designated as historical remains in 1988. Independence activists including Kim Gu, Gang U-gyu, etc., were detained here. It carries meaning as a historic place of national independen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later as a place with traces of democratization and political change. This is a very meaningful site for educating descendants to instill national pride and spirit of independence.

是日本为了全面侵略我国于1907年在仁王山山脚下建起的首尔看守所,是由日本人设计的近代监狱。建成可容纳约五百名的560多坪木制建筑后,起名为“京城监狱”。是把钟路监狱的五百多囚犯收容在该处,直到1945年为止在此囚禁独立运动家,并进行严刑拷打,甚至夺走宝贵生命的地方。旧首尔看守所是见证了日帝时代民族独立的历史与之后的民主化、政治变迁过程之地,现在被用作启迪后人、弘扬民族自尊与自主精神的教育基地。

旧ソウル拘置所は、日本が韓国に対する侵略を本格化するために1907年に仁王山の麓に日本人が設計して建てた近代的な監獄である。約500余人を収容することができる560余坪の木造建物を建てて「京城監獄」と名付け、鍾路の監獄から500余人を連れて来て収容した。それから、光復の1945年まで独立運動家たちを閉じこめて拷問と迫害を行い、ひいては命まで奪った所である。日帝強占期には民族独立の歴史を象徴し、その後には民主化と政治的変化の姿を秘めた所で、子孫たちに民族の自尊と自主精神を悟らせる、生きた教育の場として非常に意味深い所である。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이다.

약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560여 평의 목조건물을 짓고 ‘경성감옥’이라 불렀다. 종로의 감옥에서 500여 명을 데려와 수용하고 광복을 맞이하는 1945년까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고 고문과 박해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은 곳이다. 애국인사들이 늘어나자 1912년 일제는 마포구 공덕동에 감옥을 또 지어 경성감옥이라 하고, 원래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이라 불렀다. 1923년 서대문감옥은 서대문형무소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었다. 18세 미만의 소녀들과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까지 수용하였으며, 김구선생·강우규·유관순 열사 등이 이곳에 수감되었었다. 유관순 열사는 이 곳에서 목숨을 다하였다.

1946년 광복 직후에는 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로 바뀌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수용되었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67년에는 서울구치소로 바뀌었고,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변동으로 인해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다. 1988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독립의 역사를 지니며 그후로는 민주화와 정치적 변화의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서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존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주는 산 교육장으로 매우 뜻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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