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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72호

남원 만인의총 (南原 萬人義塚)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역사사건
수량/면적 89,168㎡
지정(등록)일 1981.04.01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향교동 628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선조 30년(1597) 7월말 왜군 11만명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왜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만 여명의 관리와 군사, 백성이 사망하였는데,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고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만인의총 → 남원 만인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This is the graveyard of those who died during the battle with the invading Japanese force in defense of Namwon Fortress in the 3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1597) when the Japanese invaded Korea for the second time. The Japanese thought that they had lost their first war of aggression in 1592, because they had not been able to occupy the Jeolla-do area, so they set up another plan to advance northwards after conquering the Jeolla-do area during this 2nd invasion. At the end of July in the 30th year of King Seonjo’s reign (1597) a Japanese force of 110,000 soldiers attacked the Hwangseoksanseong and Namwonseong Fortresses. Meanwhile the government had well recognized the importance of Namwon as a strategic point which connected the Jeolla-do and its northern neighboring area, the Chungcheong-do area, so all the people at the Namwonseong Fortress were prepared for its defence. Every one at Namwonseong Fortress including soldiers, government officers and civilians fought bravely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however their defence was unsuccessful, and the fortress was finally occupied by the Japanese Army. More than 10,000 men of were killed during this battle. After the war was over, the bodies of those killed in this battle were buried together in a common place, and Chungnyeolsa Shrine was built in the 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haegun (1612). It was initially located near Namwon Railway Station, but it soon became surrounded by private houses so was moved to its present location in 1964.

在朝鲜宣祖30年(1597)丁酉再乱时期许多人为了守护南原城战死在与倭寇战斗的过程中,万人义冢就是埋葬这些人的坟墓。倭寇认为战败的原因在于壬辰倭乱时没有占领全罗道地区,于是发动丁酉再乱时制定了先占领全罗道地区,然后北上的计划。宣祖30年(1597)7月末11万倭寇攻打黄石山城与南原。南原是连接全罗道与忠清道的战略要地,国家也深知其重要性,非常重视其防备。军·官·民齐心协力抵抗倭寇,但南原城最终还是被攻陷。将这场战斗中牺牲的万余名官吏、士兵和百姓与壬辰倭乱后的牺牲者合葬,光海君四年(1612)修建了忠烈祠并为八位忠臣举行了祭享。万人义冢原本位于南原站附近,但因周围被民宅环绕,遂于1964年搬迁至现在的位置。

南原万人義塚は朝鮮時代宣祖30年(1597)に起きた丁酉再乱の時、南原城を守るために倭敵と戦って戦死した人々を葬った墓である。倭軍は壬辰倭乱の時、全羅道地方を占領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に結局敗れたと考え、丁酉再乱の時には全羅道地域を占領した後、北上する計画を立てた。宣祖30年(1597)7月末、倭軍11万人が黄石山城と南原を攻撃した。南原は地域的には全羅道と忠清道を繋ぐ要衝地で、朝鮮もこの地域の重要性について認知していたため、防御を疎かにしていなかった。倭軍の侵略に対して、軍・官・民が一団となって戦ったが、南原城は遂に陥落してしまった。この戦いで一万余人の官吏と兵士、国民が死亡したが、壬辰倭乱の後、戦死した人たちの亡き骸を1ヶ所に合葬し、光海君4年(1612)には忠烈祠を建てて八忠臣の祭祀を行った。元々この墓は南原駅の近くにあったが民家に囲まれるようになったため、1964年に現在のところに移転した。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하여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들을 함께 묻은 무덤이다.

왜군은 임진왜란때 전라도지방을 차지하지 못해서 결국 패했다고 생각하여, 정유재란 때는 전라도 지역을 점령한 뒤 북상할 계획을 세웠다. 선조 30년(1597) 7월말 왜군 11만명이 황석산성과 남원을 공격하였다. 남원은 지역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 국가에서도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왜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군·관·민이 합심하여 싸웠으나 남원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이 싸움에서 만 여명의 관리와 군사, 백성이 사망하였는데, 임진왜란이후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한곳에 합장하였고 광해군 4년(1612) 충렬사를 세워 8충신을 제향 하였다. 처음 이 무덤은 남원역 부근에 있었으나 민가에 둘러싸이게 되어 1964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만인의총 → 남원 만인의총)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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