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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31호

홍성 홍주읍성 (洪城 洪州邑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109,542㎡
지정(등록)일 1972.10.14
소 재 지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200-2번지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홍성군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2012년에 남문인 홍화문을 복원하였다.

이 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홍주성(조양문,아문,산성) →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Originally, the length of this stone wall was almost 1,772 meters, but nowadays only about 800 metres remain. There are insufficient records telling when the earliest construction period was, but a note in Sejongsillok jiriji (Geography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tells two facts, one is the circumference, and the other, that there was a spring inside the fortress that never dried through all four seasons. It is said to have been built first in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Great of the Joseon Dynasty as part of his national defense policy. Fortress construction using advanced building technologies protected villages against attack from Waegu, the Japanese raiders. This wall was repaired and reconstructed in 1451, the 1st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jong, the 5th King of Joseon. It was said that at that time to be about 1.5km in circumference and 3.3m in height with four gates, various defense facilities and two wells. The remaining eastern gate called Joyangmun was restored to its original condition in 1975. One of the gates, Amun, was built at the time of construction of the upper story of Joyangmun Gate, and the letters "Hongjuamun" were carved on a signboard, in calligraphy by Heungseon Daewongun but it does not remain now. This is the largest among Amun, traditional entrance gates into public building and has a unique form. Furthermore it is regarded as important evidence in researching structures and layouts of public buildings in the Joseon Dynasty.

是忠清南道洪城郡内的一个城,全长约1,772米的城墙中有800米的石筑墙,其中部分留存至今。始建年代不详,只在《世宗实录地理志》中记录了洪州城的周长和有一处冬夏亦不干涸的泉水。三国时代至朝鲜时代期间洪州城与邑城相连,筑城时采用了朝鲜初期的新筑城方式,意义重大。

洪州城は忠清南道洪城郡にある城で、長さ約1,772mの城壁のうち約800mの石で築かれた城壁の一部が残っている。初めて築かれた年代は分からず、『世宗実録地理志』に洪州城の周囲に関する記録と、夏と冬にも乾かない泉が一つあると記されているのみである。ここは三国時代から朝鮮時代に至るまで邑城として用いられ、朝鮮初期の新しい形式によって築かれた城が残っているという点において価値がある。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2012년에 남문인 홍화문을 복원하였다.

이 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홍주성(조양문,아문,산성) → 홍성 홍주읍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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