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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208호

서울 정릉 (서울 貞陵)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수량/면적 297,798㎡
지정(등록)일 1970.05.26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 (정릉동, 정릉)
시 대 조선 태종 9년(1409), 현종 10년(1669)
소유자(소유단체) 문화재청 조선왕릉중부지구관리소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조선왕릉중부지구관리소 
문화재 담당부서 : 중부지구관리소- 상세문의

조선 1대 태조의 두 번째 왕비 신덕황후 강씨(?~1396)의 능이다.

신덕황후는 강윤성의 딸로 고려의 풍습에 따라 태조의 경처(서울에서 결혼한 부인)가 되었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최초의 왕비(현비)로 책봉되었다. 둘째아들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시켜 정치적 기반을 닦았으나 이 일로 왕자의 난이 일어나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태조는 신덕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중구 정동에 조성하였으나,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1409년(태종 9) 도성 안에 능이 있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에 옮겼고, 남아있던 목재와 석물을 태평관太平館과 청계천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태조의 왕비로 인정하지 않았다. 1669년(현종 10) 송시열 등의 상소로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정릉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능침은 추존된 왕비의 능제에 맞게 조성되어 병풍석과 난간석, 무석인을 생략하고 문석인과 석양, 석호 등을 배치하였다.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 옛 정릉에서 옮겨온 석물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대에 다시 조성하였다. 이후 1899년(광무 3)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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