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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62호

북한산성 (北漢山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515,224.9㎡
지정(등록)일 1968.12.05
소 재 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 외 서울 은평구,성북구,강북구,도봉구일원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고양시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Built in the 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aeru (132), this fortress was used for the defense of the capital when Baekje set up its capital at Wiryeseong Fortress in Hanam. In the 11th century during an invasion by Khitans, King Hyeonjong of Goryeo relocated the coffin of its founding monarch, Taejo, to this fortress. Goryeo troops fought the Mongolian invaders in the 1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ojong of the Goryeo Dynasty here (1232). It was repaired in the 13th year of the reign of King U (1387).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the Manchu Invasion in 1636, upon hearing a loud voice ordering the rebuilding of the fortress, King Sukjong of Joseon undertook a massive project to construct a stone fortification on the ruins of an old earthen fortress. The fortress was composed of 13 gates including Daeseomun (west gate) and Dongseomun (east-west gate) and Bungmun (north gate) and pedestals to construct the Dongjangdae, Namjangdae, and Bukjangdae command posts. Inside the fortress are 12 temples including Jungheungsa Temple, 99 wells, 22 small reservoirs, and 8 storehouses. The remains in Bukhansanseong such as Daeseomun, command post site, site of a well, and site of the buildings of defense were practically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Sukjong of the Joseon Dynasty, except some earthen wall remains constructed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This spot was of major strategic interest since the troops of Goguryeo, Baekje, and Silla often fought here for hegemony; it was also needed by the Joseon Dynasty for the defense of its capital.

北汉山城是百济定都河南慰礼城时守护都城的北方山城。山城有大西门、东西门、北门等13座城门,以及点柴生火的东将台、南将台、北将台。城内有中兴寺等12座寺院、99口水井、26个小水库以及8座仓库。现在北汉山城内留存有一些三国时代的土城,大多修建于朝鲜肃宗时期,女墙已倒塌,只留下大西门和推测是将台遗址·水井遗址·建筑物遗址的部分防御设施。北汉山城地区是高句丽、百济与新罗竞相争夺的地方,朝鲜时代发挥了守护都城的重要作用。

北漢山城は、百済が首都を河南慰礼城に定めた時に都城を守った北側の城である。城の規模は、大西門・東西門・北門など13の城門と火を起こした所として東将台・南将台・北将台があった。城内には重興寺をはじめとする12の寺刹と99の井戸、26の小さな貯水池、そして8つの倉庫があった。現在、北漢山城には三国時代の土城が少し残ってはいるものの、ほとんどが朝鮮肅宗の時に築かれたもので、女墻は崩れ、大西門と将台の跡・井戸の跡・建物の跡と考えられる防御施設の一部が残っている。この地域は高句麗・百済・新羅がお互いに奪い合うために争奪戦を繰り広げた所で、朝鮮時代には都城を守る重要な所であった。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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