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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60호

서울 살곶이 다리 (서울 [箭串橋])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교량
수량/면적 10,618㎡
지정(등록)일 1967.12.15
소 재 지 서울 성동구 행당1동 58번지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성동구
해제일 2011.12.23

조선시대의 수도인 한양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통로로 사용되던 다리로 살곶이 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는 정종과 태종의 잦은 행차 때문에 세종 2년(1420) 5월에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태종이 죽자 왕의 행차가 거의 없어 완성되지 못하였다. 그 후 이 길을 자주 이용하는 백성들 때문에 다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성종 6년(1475)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성종 14년(1483)에 완성했다. 마치 평평한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하여 ‘제반교(濟盤橋)’라고도 불렀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모두 64개의 돌기둥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돌기둥의 모양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고안되었다. 1920년대 서울에 내린 집중호우로 다리의 일부가 떠내려 가서 70년대에 다시 고쳐 지었으나, 다리의 오른쪽 부분에 콘크리트를 잇대어 복원함으로써 원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전곶교 → 서울 살곶이 다리)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是用于连接朝鲜时代的首都汉阳与东南地区主要通道的桥梁。箭串桥在朝鲜前期修建的桥梁中规模最大,共使用了64根石柱。为了减少水的阻力将石柱设计成了菱形。二十世纪二十年代首尔的集中暴雨冲垮了部分桥梁,70年代修缮时使用了混凝土修缮桥梁右侧部分,与原本的面貌略有不同。

ソウル箭串橋は朝鮮時代の首都であった漢陽と東南地方を結ぶ主な通路として利用された橋で、サルゴジ橋とも呼ばれている。朝鮮前期に架けられた橋の中で最も規模の大きな橋で、全部で64本の石柱を使って造成された。石柱の形は流れる水の抵抗を減らすために菱形に考案された。1920年代にソウルに降った集中豪雨で橋の一部が流されたため、70年代に再び架け直したが、橋の右側をコンクリートで繋げて復元したため、本来の姿を少し失っている。

대다수의 석교(石橋)문화재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사적 지정요건인 (인물, 역사, 사건 등)을 고려해볼 때, 사적보다는 유형문화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므로 사적을 해제하고 보물로 변경 지정하고자 함 (2011.12.23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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