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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23호

창경궁 (昌庆宫)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수량/면적 216,774㎡
지정(등록)일 1963.01.1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문화재 담당부서 : 창경궁관리소- 상세문의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궁궐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1911년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3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As a palace in the Joseon Dynasty, Changgyeonggung was built at the Suganggung Palace Site where King Taejong stayed. Seongjong had it built for Queens Jeonghui, Sohye, and Ansun in his 14th year (1483). In the beginning, there were halls like Myeongjeongjeon and Munjeongjeon; sleeping quarters like Suryeongjeon, Hwangyeongjeon, Gyeongchunjeon, Inyangjeon, Tongmyeongjeon; and the other buildings like Yanghwadang, Yeohwidang, and Saseonggak. These were the only palaces facing the east among the palaces in the Joseon Dynasty. Changgyeonggung Palace was rarely used in the beginning, but it served as one of the main palaces for the Royal Families, after it was burnt down together with the Gyeongbokgung and Changdeokgung Palac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restored along with Changdeokgung. Concubine Jang, who was loved by King Sukjong but was sentenced to death later due to her attempt to poison Queen Inhyeon, stayed in Chwiseondang Hall in this palace. King Yeongjo had the Crown Prince Sado confined in the rice chest in Seoninmun Gate of this palace for 8 days, leaving him to starve to death. Changgyeonggung Palace has been modified drastically since Sunjong became the emperor. In 1909, the Japanese demolished Changgyeonggung and placed a zoo and a botanical garden instead. It was once called Changgyeongwon. In 1983, it got its name back when the repair work started. Many kings including Jangjo (Crown Prince Sado), Jeongjo, Sunjo, and Heonjong were born here. The main gate and hall were rebuilt by King Gwanghaegun and are still preserved. Along with Changdeokgung, it was deemed a valuable resource to study the history of the palace of the Joseon Dynasty.

朝鲜时代的宫殿,在太宗曾经居住过的寿康宫遗址上修建而成。成宗14年(1483)为贞熹王后、昭惠王后、安顺王后修建了昌庆宫,初建当时有明政殿·文政殿的正殿与寿宁殿·欢庆殿·景春殿·仁扬殿·通明殿等寝殿以及养和堂·丽辉堂·思诚阁,是朝鲜时代宫殿中唯一朝东修建的宫殿。昌庆宫是庄祖·正祖·纯祖·宪宗等许多国王诞生的宫殿,光海君时期重建的正门·正殿保存完好,昌庆宫与旁边的昌德宫一起为了解朝鲜时代宫殿的历史提供不可或缺的重要资料。

昌慶宮は朝鮮時代の宮で、太宗が生活した寿康宮の跡に建てられた建物である。成宗14年(1483)、貞熹王后・昭恵王后・安順王后のために昌慶宮を建てた。初めて建てた当時の建物は、明政殿・文政殿の正殿と、寿寧殿・歓慶殿・景春殿・仁陽殿・通明殿などの寝殿及び養和堂・麗暉堂・思誠閣があり、朝鮮時代の宮の中では唯一東に向かって建てられた。昌慶宮は荘祖・正祖・純祖・憲宗をはじめとした多くの王が生まれた宮で、光海君の時に再建された正門・正殿が保存されており、横にある昌徳宮とともに朝鮮時代の宮の歴史を察するのになくてはならない重要な遺跡である。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궁궐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1911년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3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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