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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18호

진주성 (晋州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171,805.1㎡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진주시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Jinju used to be a military base against the Japanese enemy in the late Goryeo Dynasty, playing a major role in preventing the enemy from going into Jeolla-do.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the 2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1592), about 3800 soldiers under command of General Kim Si-min defeated about 30000 Japanese soldiers in this fortress. However, in the second Jinju Battle in 1593, about seventy thousand soldiers joined and fought the Japanese military bravely, but all died in the war. In the fortress have been many administrative offices and command centers during the Joseon Dynasty. Jinjuseong Fortress has a circumference of 1.7 kilometers. Jinju National Museum, the Alter for the spirits perished in the battle of 1592 and 1593, and Hoguksa Temple are in the fortress area.

晋州城是浓缩了晋州历史与文化的圣地,原为土城,后来在高丽朝禑王5年(1379)由晋州牧使金仲光将其改建成了石筑城。晋州城周长为1.7km,城内有矗石楼·彰烈祠·义妓祠·北将台·西将台·岭南布政司·国立晋州博物馆·晋州城壬辰大捷癸巳殉义坛·矗石门·拱北门·护国寺等。

慶南晋州城は晋州の歴史と文化が集約されている晋州の聖地である。元々は土城であったものを高麗時代禑王5年(1379)に晋州牧使金仲光が石で築き直した。城の周囲は1.7㎞で、城内には矗石楼・彰烈祠・義妓祠・北将台・西将台・嶺南布政司・国立晋州博物館・晋州城壬辰大捷癸巳殉義壇・矗石門・拱北門・護国寺などがある。

진주성은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진주의 성지(聖地)이다.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우왕 5년(1379)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조선조 선조 24년(1591) 7월, 경상감사 김수(金수:1537∼1615)는 진주성을 수축하고 외성(外城)을 쌓았다. 동 25년(1592) 10월, 임진왜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1554∼1592)이 3,800명의 군사로서 3만 여명의 왜적을 물리쳐 진주성대첩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인 계사년(1593) 6월에는 전년의 패배를 설욕코자 10만 여명이 또 침략하여 끝내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는 비운을 겪었다. 동 37년(1604)에는 합포(合浦, 마산(馬山))의 우병영을 진주성으로 옮겨 온 이래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이 있었고, 고종 32년(1895) 5월부터는 진주관찰부, 건양 원년(1896) 8월부터는 경상남도관찰사의 감영이 있었다. 그리하여 1925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청이 있었다.

성의 둘레는 1.7㎞이다. 성내(城內)에는 촉석루·창열사·의기사·북장대·서장대·영남포정사·국립진주박물관·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촉석문·공북문·호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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