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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13호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統營 閑山島 李忠武公 遺蹟)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역사사건
수량/면적 528,034㎡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 (두억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경상남도
관리자(관리단체) 경상남도지사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制勝堂)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한산도이충무공유적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Built in memory of the Hansan Battle wherein Admiral Yi Sun-sin scored a spectacular triumph over the Japanese Nav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t was regarded as a symbol of patriotism and national defense. Hansan Battle, one of the three great battles along with Haengju Battle and Jinju Battle, was a memorable battle on the sea, with the Japanese fleet defeated under severely disadvantageous conditions. Jeseungdang Shrine was built here in the 2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1592). It used to be the center of a navy camp that commanded the sea from 1593 to 1597. Including Jeseungdang, the military camp was burnt down and destroyed in the 3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1597). It had been restored numerous times afterwards. The local villagers finally reconstructed it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Originally, Jeseungdang was built at the site of Unjudang where Admiral Yi planned a strategy with his soldiers and was named as such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On this site were Hansanjeong Archery Ground, Suru Watchtower, and Chungmusa Shrine, which preserved a portrait of Admiral Yi, as well as Jeseungdang. On top of a mountain were the Stele for the Victory at Hansan Battle and a turtle lighthouse.

统营闲山岛李忠武公遗址是纪念壬辰倭乱时期忠武公李舜臣(1545∼1598)将军大败倭寇的闲山大捷而修建的历史性场所。壬辰倭乱时忠武公与手下常在“运筹堂”制定作战计划,英祖时期在运筹堂遗址上修建房屋并取名为“制胜堂”。境内有制胜堂、供奉忠武公画像的“忠武祠”、“闲山亭”、“戍楼”等,山峰上有闲山大捷碑与龟灯台。

統営閑山島李忠武公遺跡は、壬辰倭乱の時に忠武公李舜臣(1545~1598)が倭軍を大きく破った閑山大捷を記念するために建てられた歴史的な場所である。本来、制勝堂は壬辰倭乱の最中、李舜臣が部下たちとともに作戦計画を立て執務を執り行った「運籌堂」という建物で、その跡に英祖の時に家を建て、「制勝堂」と名前をつけた。境内には制勝堂をはじめ、李舜臣の影像を祀った「忠武祠」と「閑山亭」「戍楼」などがあり、峰には閑山大捷碑とともに亀灯台がある。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충무공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선조 25년(1592) 이곳에 제승당(制勝堂)을 짓고, 26년(1593)부터 30년(1597)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그 후 영조 15년(1739)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시대 때 지방 유지들에 의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내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으며, 산봉우리에는 한산대첩비와 함께 거북등대가 있다.



※(한산도이충무공유적 →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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