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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7호

경주 남고루 (慶州 南古壘)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수량/면적 50,134.4㎡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원효로207번길 28-1, ,황남동, 인왕동,성동동 (황오동)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경주 대릉원의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둘러싸면서 다시 북쪽으로 북천에 이르는 방어용 시설물인 토루(土壘)이다.

경주시의 개발로 대부분 파손되고 지금은 일부에 흔적만 남아있다. 1936년 조사당시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고분군 또는 반월성(半月城)과 연관성이 없는 점, <고려사>의 1012년 경주에 축성했다는 기록과 <동경잡기(東京雜記)>의 고려 현종 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의 석축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의 위치·두께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때 읍성의 수재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3년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성벽의 기초 석축과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확인되어, 고려시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Though noticeable in only a few places, this earthen defensive embankment extends eastward from the entrance of Gyeongju's Daereungwon Ancient Tomb Site, around Ancient Tombs in Hwango-dong, and from there, northward to Bukcheon Stream. This historic site was almost destroyed. When and why it was constructed are not known for sure, but it may have been constructed during the third year of the reign of King Hyeonjong of Goryeo Dynasty (1012) since historical records show that a bank of stones was built in the northern part of Gyeongju at that time.

庆州南古垒是从庆州大陵园的南面入口向东环绕皇吾洞古坟群再向北延伸至北川的土垒防御设施。1993年通过局部调查已确认了城墙的基础石筑部分与人工防御设施护城河,也可能是高丽时代邑城的外城。

慶州南古塁は、慶州大陵苑の南側の入口から東側には皇吾洞の古墳群を囲みながらまた北側の北川に至る防御用施設物の土塁のことである。1993年に部分的な調査を通じて城壁の基礎的な石築と人工的に水が流れるようにした防御施設である垓子が確認され、高麗時代邑城の外城である可能性も持っている。

경주 대릉원의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둘러싸면서 다시 북쪽으로 북천에 이르는 방어용 시설물인 토루(土壘)이다.

경주시의 개발로 대부분 파손되고 지금은 일부에 흔적만 남아있다. 1936년 조사당시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으며, 신라의 고분군 또는 반월성(半月城)과 연관성이 없는 점, <고려사>의 1012년 경주에 축성했다는 기록과 <동경잡기(東京雜記)>의 고려 현종 때 전라·충청·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의 석축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 그리고 현재의 위치·두께 등으로 미루어보아 고려 때 읍성의 수재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3년 부분적인 조사를 통해 성벽의 기초 석축과 인공적으로 물이 흐르도록 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확인되어, 고려시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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