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사적 제15호

경주 흥륜사지 (慶州 興輪寺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수량/면적 11,472㎡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사정동 281-1번지
시 대 신라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흥륜사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것이라 전한다. 신라 미추왕이 절을 짓도록 하였다고 하나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며, 규모가 작고 검소하여 초가집을 짓고 불법을 강연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미추왕이 죽자 절은 곧 폐허가 되었고, 그 후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로 다시 짓기 시작하여 진흥왕 5년(544)에 완성되었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라 하고 백성들이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왕 자신도 만년에는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이라는 법명을 받고 절의 주지가 되었다. 이후 흥륜사는 대법회를 열고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라의 큰 절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한 절이 흥륜사이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절도 이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당 안에는 선덕여왕 때 김양도가 만들었다는 미륵삼존불상이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아도·이차돈·혜숙·안함·의상을 그린 신라 10성의 상(像)을 그린 벽화가, 서쪽 벽에는 표훈·원효·혜공·지장·사파의 상을 모셔 놓았다고 전한다. 금당지 앞에는 8각탑지와 서쪽의 경루가 있고 이를 둘러싼 회랑지가 조사되었다. 흥륜사의 남문은 길달문이라고 불렀는데, 귀신인 길달(吉達)이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말 반란군에 의해 불탄 것을 경명왕 5년(921)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시대에 화재로 불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큰 석조와 배례석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신라의 미소로 일컫는 사람얼굴 모양의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터로 보기도 한다.



※(경주흥륜사지 → 경주 흥륜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Silla's first Buddhist temple, Heungnyunsa Temple, is said to have been first built as a poor, thatch-roofed building by Buddhist Missionary Ado during the Silla Dynasty. When, after the martyrdom of Yi Cha-don in the 1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Beopheung (527), Buddhism was adopted as the national religion in the fifth year of the reign of King Jinheung (544), Heungnyunsa Temple was expanded and rebuilt as the royal temple. Since then, Silla kings and aristocrats had become ardent patrons of the temple, treating it as a symbol of patriotism, national prosperity, and peace. The temple consisted of a main prayer hall, an eight-story pagoda, an inner gate, a lecture hall, and the gallery, although many do not exist today. In the main hall, the Maitreya Triad is enshrined along with the portraits of some of the greatest Buddhist monks of Silla including Ado, Yi Cha-don, Hyesuk, Anham, Uisang, Pyohun, Wonhyo, Hyegong, Jijang and Sapa. The temple was burnt down by the rebel forces during the last years of Silla but rebuilt in the fifth year of King Gyeongmyeong’s reign (921). The temple was damaged by another fire in the Joseon Dynasty, and it remained closed. It was in the 1980s when Heungnyunsa Temple was reborn. The stone water bowl, the largest stone work of Silla, and the stone prayer platform that belonged to the old temple were moved to Gyeongju National Museum. The most famous relic excavated here is perhaps the broken piece of "male" tile onto which a smiling face is carved.

兴轮寺是新罗时期最早建成的寺院,据说是由来此传播佛教的高句丽僧侣阿道所建。还有新罗味邹王建寺的说法,但创建年代不详,寺院规模小且设施简朴,据说只是盖起茅草屋讲演佛法的规模而已。兴轮寺在新罗末期被叛军烧为灰烬,在景明王5年(921)重建,但在朝鲜时代又遭受火灾,最终关闭了。寺院遗址内曾有新罗时代石造物中最大的石祖和拜礼石,如今保管于在国立庆州博物馆。另外,这里还出土被称为新罗之微笑的人脸模样的屋瓦。现在的兴轮寺重建于20世纪80年代,寺内出土了刻有“灵庙寺”的瓦片,推测是善德女王时期修建的灵庙寺遗址。

興輪寺は新羅で一番最初に建立された寺で、仏教を伝播するために来た高句麗の僧侶阿道が建立したと伝えられている。新羅の味鄒王が寺を建立するよう命じたといわれているが、建立年代は明らかになっておらず、規模が小さくて質素であるため藁葺きの家を建てて仏法を講演するぐらいだったという。新羅末の反乱軍によって焼かれたのを景明王5年(921)に再建したが、朝鮮時代に火事で焼けて廃寺となった。寺の跡には新羅時代の石造物のうち最も大きな石造と拝礼石があったが、現在は国立慶州博物館に保管されている。また、新羅の微笑と呼ばれる人の顔の形をした瓦が出土された。現在は、1980年代に新たに建立された興輪寺があり、「霊廟寺」と刻まれた瓦の破片が出土されたため、善徳女王の時に建立された霊廟寺の跡とも考えられる。

흥륜사는 신라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절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온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지은 것이라 전한다. 신라 미추왕이 절을 짓도록 하였다고 하나 창건 연대가 정확하지 않으며, 규모가 작고 검소하여 초가집을 짓고 불법을 강연하는 정도였다고 한다.

미추왕이 죽자 절은 곧 폐허가 되었고, 그 후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로 다시 짓기 시작하여 진흥왕 5년(544)에 완성되었다. 진흥왕은 이 절을 ‘대왕흥륜사’라 하고 백성들이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왕 자신도 만년에는 스스로 삭발하여 법운이라는 법명을 받고 절의 주지가 되었다. 이후 흥륜사는 대법회를 열고 왕실과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는 신라의 큰 절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김대성이 전생에 밭을 보시한 절이 흥륜사이고 김현(金現)이 호랑이와 인연을 맺었다는 절도 이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당 안에는 선덕여왕 때 김양도가 만들었다는 미륵삼존불상이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아도·이차돈·혜숙·안함·의상을 그린 신라 10성의 상(像)을 그린 벽화가, 서쪽 벽에는 표훈·원효·혜공·지장·사파의 상을 모셔 놓았다고 전한다. 금당지 앞에는 8각탑지와 서쪽의 경루가 있고 이를 둘러싼 회랑지가 조사되었다. 흥륜사의 남문은 길달문이라고 불렀는데, 귀신인 길달(吉達)이 지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말 반란군에 의해 불탄 것을 경명왕 5년(921)에 다시 지었으며, 조선시대에 화재로 불타 폐사되었다. 절터에는 신라시대의 석조물 가운데 가장 큰 석조와 배례석이 있었는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신라의 미소로 일컫는 사람얼굴 모양의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지금은 1980년대에 새로 지은 흥륜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영묘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선덕여왕 때 창건된 영묘사터로 보기도 한다.



※(경주흥륜사지 → 경주 흥륜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내레이션

  •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