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사적 제11호

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風納洞 土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400,023.4㎡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서울 송파구 풍납1동 72-1번지 외
시 대 삼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송파구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백제시대 초기(한성백제기) 한강변에 흙으로 쌓은 평지성으로 풍납토성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둘레가 3.5㎞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으나, 한강과 맞닿은 서쪽 성벽이 유실되어 지금은 2.1km정도만 남아있다. 발굴조사에 의해 성벽 기초부는 너비가 43m, 높이가 11m가 넘는 대규모의 토성으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중심부 하단에 뻘흙을 깔아 기초를 다진 후 그 안팎으로 진흙과 모래흙을 다진 판축기법으로 중심 토루(土壘)를 쌓아가며, 일부에 식물유기체를 깔거나 자갈을 이용하여 토루를 보강하는 등 독특한 축성기술을 동원하였다.



1925년(을측년) 대홍수 시 중국제 청동자루솥, 허리띠장식 등 상류층이 사용한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주목받아왔다. 1936년에 조선고적(제27호)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제11호)으로 지정되었다. 2000년도 경당지구 발굴조사를 거치며 한성백제시대 첫 도읍인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발굴조사가 지속되며 풍납토성이 백제의 최초 도성이었음은 학계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토성 내부 발굴조사에서 중요 유구들과 수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 상수도로 추정되는 토관, 백제 초기 최초의 동서남북대로 유구, 대형 주거지, 백제 최초의 지상식 기와 건물지, 신전 추정 초대형 건물지, ‘大夫’, ‘井’자 등이 생겨진 항아리 등 한성백제기 최고 상류층 사용 주요시설이 확인되어, 풍납토성은 백제 초기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시대 최고의 왕성유적이다.



※ ‘광주풍납리토성’은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조사연구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