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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호

부여 가림성 (扶餘 加林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51,398㎡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군사리)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
문화재 담당부서 : 고도보존육성과- 상세문의

부여 가림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부여성흥산성 →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Garimseong Fortress in Buyeo is known to have been built to protect two successive capitals of Baekje (17 BCE – 660), Ungjinseong and Sabiseong. Located on a site overlooking the entire lower reaches of the Geumgang River, the fortress was completed in 501 under the supervision of a Baekje aristocrat named Baek Ga. According to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Baek Ga rebelled against King Dongseong (r. 479-501) of Baekje, and slew him. The rebellion was, however, promptly quelled by his successor King Munyeong (r. 501-523). The fortress contains features of its three main gates along with three wells and other defensive facilities - although they are now nothing but ruins. Its wall, built with stone and earth, was designed to enclose the entire summit. The fortress was also used as the last stronghold of Baekje resistance during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660-663), and contains a shrine built to honor Yu Geum-pil (?-941), a Goryeo general who helped the poor and needy of the area in times of turbulence. It is an important historical heritage in that its construction date is clearly known along with the old names of the towns scattered around the area.

圣兴山城是为了守护百济首都熊津城与泗沘城而在锦江下游附近建造的石城,站在山顶上可将包括江景邑的锦江下游一带美景尽收眼底。据说山城是在百济东城王23年(501)由卫士佐平苩加修建,因为当时此地名为加林郡,故得名加林城。该城是百济时期修建的城郭中唯一准确知晓筑建年代的城郭,由此可以获知当时的地名,极为重要。

聖興山城は、百済の首都であった熊津城と泗沘城を守るために錦江下流付近に築いた石城である。山頂からは江景邑をはじめとした錦江下流一帯が一目に眺められる。百済東城王23年(501)に衛士佐平を司った苩加が築いたと伝えられ、当時はここが加林郡であったため加林城とも呼ばれている。この城は百済の時に築いた城郭のうちその年代がはっきりと分かる唯一の城で、昔の地名が分かる遺跡としても非常に重要である。

부여 가림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부여성흥산성 → 부여 가림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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