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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81호

서울 창의문 (서울 彰義門)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15.12.02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서울특별시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창의문(彰義門)은 한양도성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어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으나 태종16년(1416)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하여 통행을 금지시키다가 중종 1년(1506)에 다시 문을 열어 통행이 가능해졌으며.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능양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하였던 무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타 없어졌으나 영조 17년부터 영조 18년(1742)에 중건되었는데, 이때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문루에 걸어놓았다.

육축은 숭례문이나 흥인지문과 같은 장대석으로 축조하고 내부의 등성시설을 설치하였는데, 북쪽의 등성시설은 ‘ㄷ'자형의 일반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고, 여장은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되어 있다. 가구 방식은 평주의 주두 위에 바로 대들보를 얹고 이 위에 다시 화반형 부재를 놓아 마룻보와 중도리의 짜임을 받쳤다. 마룻보 위에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파련대공을 놓아 뜬창방·장여·도리로 짜여 진 마룻도리를 받고 있다. 천장은 서까래를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 물매는 가파르지 않다. 지붕마루는 양성마루로 하고, 그 위에 취두·용두·잡상을 배열하고 추녀 끝의 사래에는 토수를 끼웠다.

현재 한양도성의 문루는 숭례문, 흥인지문, 창의문 만이 남아있고, 각각 조선시대 문루 목조건축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규범적 사례이며, 한양도성의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루가 임란이후 18세기에 중건되어 큰 변형 없이 남아 있다.

위 내용으로 살펴 볼 때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문루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건축 양식적 진정성과 조선후기 도성 문루의 형식을 보여주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잘 보존되고 있어 그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다.

Changuimun Gate is one of the four minor gates of the fortress wall encircling downtown Seoul, and is located on the northwestern section of the wall. It was originally built in 1396 as part of the fortress of Hanyang (present-day Seoul) to provide, together with Sukjeongmun Gate, a transportation route linking the capital of Joseon with Yangju and Goyang. The gate was closed in 1416 according to a Pungsu principle, but was eventually reopened in 1506. It was through this gate that Prince Neungyanggun led a rebel army to attack the royal palace to dethrone King Gwanghaegun and become King Injo (r. 1623-1649) in 1623. The gatehouse was burnt down during the Imjin waeran (1592-98), a seven-year-long war started by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but it was rebuilt in 1742 and hung with a plaque engraved with a list of meritorious subjects who participated in the 1623 rebellion. Formerly a strategic defense facility, Changuimun Gate exhibits the characteristic style of late Joseon gatehouses and is highly regarded for its architectural merit. The defense structures around the gate are also in a good state of preservation.

창의문(彰義門)은 한양도성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서북쪽에 있는 문이다. 조선 태조 5년(1396) 도성 축조때 건립되어 숙정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으나 태종16년(1416) 풍수지리설에 의해 폐쇄하여 통행을 금지시키다가 중종 1년(1506)에 다시 문을 열어 통행이 가능해졌으며.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 능양군을 비롯한 반정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하였던 무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문루가 불타 없어졌으나 영조 17년부터 영조 18년(1742)에 중건되었는데, 이때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판에 새겨 문루에 걸어놓았다.

육축은 숭례문이나 흥인지문과 같은 장대석으로 축조하고 내부의 등성시설을 설치하였는데, 북쪽의 등성시설은 ‘ㄷ'자형의 일반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고, 여장은 총안이 없는 전돌로 축조되어 있다. 가구 방식은 평주의 주두 위에 바로 대들보를 얹고 이 위에 다시 화반형 부재를 놓아 마룻보와 중도리의 짜임을 받쳤다. 마룻보 위에는 사다리꼴에 가까운 파련대공을 놓아 뜬창방·장여·도리로 짜여 진 마룻도리를 받고 있다. 천장은 서까래를 모두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 물매는 가파르지 않다. 지붕마루는 양성마루로 하고, 그 위에 취두·용두·잡상을 배열하고 추녀 끝의 사래에는 토수를 끼웠다.

현재 한양도성의 문루는 숭례문, 흥인지문, 창의문 만이 남아있고, 각각 조선시대 문루 목조건축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규범적 사례이며, 한양도성의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루가 임란이후 18세기에 중건되어 큰 변형 없이 남아 있다.

위 내용으로 살펴 볼 때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문루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건축 양식적 진정성과 조선후기 도성 문루의 형식을 보여주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육축과 등성시설 또한 잘 보존되고 있어 그 가치와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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