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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825호

의성 만취당 (義城 晩翠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동 / 92.84㎡
지정(등록)일 2014.06.05
소 재 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안동김씨만취당파문중
관리자(관리단체) 안동김씨만취당파문중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 서애 류성룡 등 많은 인사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건립연대는 만취당 중수기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582년(선조15)에 짓기 시작하여 1584년에 완공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1711년(숙종 37) 연목을 일부 교체하였고, 1727년(영조 3) 동쪽으로 2칸을 증축하였으며(復齋), 1764년(영조 40)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증축(西小翼室)하여 현재와 같은 T자형 평면이 완성되었다.

만취당은 누각형 건물로 기둥은 배면을 제외한 3면은 루하주와 루상주로 구분되며 약한 흘림을 두어 원형으로 치목하였다. 창방의 치목은 모서리를 궁굴린 고식의 치목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귀솟음이 완연하다. 기둥상부에는 주두를 얹고, 외부는 짧으면서 힘 있는 살미를 두었으며, 내부는 선각된 익공형(翼工刑) 보아지를 대량(대들보)방향으로 얹었다. 초창 이후 증축된 온돌방 부분은 창호 결구법이 맞댄이음으로 대청 부분과는 완연히 구별되며, 상부구조는 기존의 구조를 손상시키지 않고 증축하여 당초의 가구법을 확인할 수 있다. 겹처마의 선자연은 치목수법이 정연하다.

만취당은 도리와 대량의 구조결구법 등 초창 당시의 건축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6세기 사대부가의 주거 및 선비문화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건축적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Manchwidang is the name of a building established by Kim Sa-won (1539-1601), a pupil of the great Neo-Confucian thinker Yi Hwang (pen-name: Toegye, 1501-1570), for use as his personal study and as a school in which to educate local youths. The building features numerous plaques bearing poetic works written by distinguished men of letters of the mid-Joseon period including Yi Hae (pen-name: Ongye, 1496-1550) and Ryu Seong-nyong (pen-name: Seoae, 1542-1607), and a name plaque handwritten by Han Ho (pen-name: Seokbong, 1543-1605), who is generally regarded as one of the greatest calligraphers of Joseon. A record of the renovation of the house shows that its construction was begun in 1582 (15th year of the reign of King Seonjo of the Joseon Dynasty) and completed two years later. The house underwent three major repair and renovation works (1711, 1727, and 1764) to acquire its current T-shaped layout. The house has considerable historical and aesthetic value due to the good condition of the original structures, including those supporting the roof, and the architectural modifications undertaken to meet the culture of the aristocratic literati and social demands of mid-Joseon.

晚翠堂是退溪李滉的弟子金士元(1539~1601年)为研究学问,培养人才而修建的建筑,前来此处的温溪李瀣、西厓柳成龙等许多人留下了诗文,匾额为石峯韩濩亲笔所书。建筑的修建年代可根据晚翠堂重修记录得到确认,记录中说,1582年(宣祖15年)开始修建,1584年完工。此后于1711年(肃宗37年)更换了一部分椽木,1727年(英祖3年)往东扩建了2间(复斋), 1764年(英祖40年)往西扩建了1间暖炕房(西小翼室),现在的T字形平面完成。 晚翠堂为楼阁形建筑,除背面外,其它三面的柱子分为楼下柱和楼上柱,稍突出,木材加工成圆形。昌枋的木材有古老的棱宽加工技法,角柱比中间的柱子高,线条一览无余。柱子上部放着柱头,外部有短而有力的雀替,内部线刻的翼工形梁奉搭在大梁方向。扩建的暖炕房窗户的结构法为对接,与大厅完全不同,上部架构在不损坏原有结构的基础上进行了扩建,可确认当时的架构法。双层屋檐扇子椽的加工手法严谨。 晚翠堂很好地保存着檩子和大梁的架构法等初建时的建筑手法,很好地展现了16世纪士大夫家庭的居住状况和儒生文化以及随着社会要求变化的建筑过程,

晩翠堂は退渓・李滉(イ・ファン)の弟子、金士元(キム・サウォン、1539~1601)が学問に励み、後学を養成するために建てたものである。ここを訪れた温渓・李瀣(イ・ヘ)、西厓・柳成龍(ユ・ソンリョン)等の多くの知識人による詩文が残っており、扁額は石峰・韓濩(ハン・ホ)の真筆による。建設年度は晩翠堂の重修記文によると、1582年(宣祖15)に建て始め、1584年に完工したと記されている。その後、1711年(粛宗37)、垂木の一部を換え、1727年(英祖3)には東に2間を増築し(復斎)、1764年(英祖40)には西に1間のオンドル部屋を増築(西小翼室)し、現在のような「T字型」の平面となった。 晩翠堂は楼閣型の建物である。柱は背面を除く3面の下柱と上柱により構成されており、少し中央をふくらませた円柱となっている。柱貫は隅を丸くした古式技法が施されており、チュニョ(四隅の軒先)は穏やかな曲線を描いている。柱頭があり、外部には力の感じられる短いサルミがあり、内部は線刻の装飾を施した梁を大梁の方向に載せている。建物の建設後に増築されたオンドル部屋では窓戸が単純に接合されており、大きな居間の部分とは完全に区別されている。上部構造は従来の構造を損傷させずに増築しているので、当初の架構法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二軒の扇状の垂木が整然としている。 晩翠堂は大梁と桁の結構法など、建設当時の技法をそのまま残しており、16世紀における士大夫の住居やソンビ文化、社会のニーズに応じて変化していく建築の様子を見ることができる。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 서애 류성룡 등 많은 인사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건립연대는 만취당 중수기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582년(선조15)에 짓기 시작하여 1584년에 완공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1711년(숙종 37) 연목을 일부 교체하였고, 1727년(영조 3) 동쪽으로 2칸을 증축하였으며(復齋), 1764년(영조 40)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증축(西小翼室)하여 현재와 같은 T자형 평면이 완성되었다.

만취당은 누각형 건물로 기둥은 배면을 제외한 3면은 루하주와 루상주로 구분되며 약한 흘림을 두어 원형으로 치목하였다. 창방의 치목은 모서리를 궁굴린 고식의 치목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귀솟음이 완연하다. 기둥상부에는 주두를 얹고, 외부는 짧으면서 힘 있는 살미를 두었으며, 내부는 선각된 익공형(翼工刑) 보아지를 대량(대들보)방향으로 얹었다. 초창 이후 증축된 온돌방 부분은 창호 결구법이 맞댄이음으로 대청 부분과는 완연히 구별되며, 상부구조는 기존의 구조를 손상시키지 않고 증축하여 당초의 가구법을 확인할 수 있다. 겹처마의 선자연은 치목수법이 정연하다.

만취당은 도리와 대량의 구조결구법 등 초창 당시의 건축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6세기 사대부가의 주거 및 선비문화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건축적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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