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문화재 검색

  • 인쇄

보물 제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13.09.04
소 재 지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로433번길 186 (조안면, 수종사) / (지번)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수종사
관리자(관리단체) 수종사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의 석탑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하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여 경관이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석조부도, 소형석탑과 함께 대웅전 옆에 옮겨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나 북한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 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시에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서 이 불상들 가운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1479)가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홍치 6년(1493)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숭정원년(1628)에 화원[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건립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도 확인된다. 또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각부의 부재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The Octagonal Five-story Stone Pagoda of Sujongsa Temple is a stone structure of Joseon erected on a mid-slope of Ungilsan Mountain in Namyangju, Gyeonggi-do. A subordinate of Bongseonsa Temple, currently the head temple of the 25th Dioc. of the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the temple is known to have been established in 1459. The pagoda was originally set up on a mountain ridge east of the temple overlooking the Yangsuri area where the two main streams of Hangang River (Bukhangang and Namhangang) merge. The pagoda is currently standing in front of Daeungjeon, the central prayer hall of Sujongsa Temple, along with a stone stupa and another smaller pagoda. The pagoda is one of the rare examples of the Goryeo pagoda marked by octagonal body; others include the Octagonal Nine-story Pagoda of Woljeongsa Temple in Pyeongchang and the Octagonal Thirteen-story Pagoda of Bohyeonsa Temple in Hyangsan, North Korea, which became significantly reduced and more decorative during the early Joseon Period. Archaeologists found 19 Buddhist statuettes in the first-story body and roof-stone and middle pedestal of the base during a repair work performed in 1957 and 12 more statuettes in the second- and third-story roofstones when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0.

水钟寺八角五层石塔是位于京畿道南杨州云吉山半山腰的水钟寺传下来的一座朝鲜时代的石塔。水钟寺乃大韩佛教曹溪宗第25教区本寺——奉先寺之末寺,据传为朝鲜世祖5年(1459年)修建。据说石塔本来修建于寺院东侧的山脊上,此位置可远眺南汉江和北汉江汇合的两水里地区,视野开阔,拥有景色优美的环境。现在与石造浮屠、小型石塔一起被移至大雄殿旁。 水钟寺八角五层石塔在继承与平昌月精寺八角九层石塔或北朝鲜地区香山普贤寺八角十三层石塔相同的高丽时代八角石塔的传统之同时,又很好地展现了规模逐渐变小,变为具装饰性的朝鲜初期石塔的形态。此塔于1957年解体维修时,在1层塔身和屋盖石、塔基中台石中发现了19尊佛像,1970年搬迁时又在2层、3层屋盖石中发现了12尊佛像。 通过一起发现的墨书铭,确认了这些佛像中有由太宗的后宫明嫔金氏(?-1479年)发愿修建,成宗的后宫们于弘治6年(1493年)交付的2尊佛像(1尊释迦如来和1尊观音菩萨)以及仁穆大妃(贞懿大王大妃)发愿修建的金铜佛·菩萨像、崇祯元年(1628年)由画员(雕塑僧)性仁修造的金铜毘卢遮那佛坐像(台座底部阴刻铭文),从中可知此石塔的修造下限为1493年,于1628年重修。 塔的形态是在地台石上放上八角台石,其上再放上与佛像的八角莲花台座形式相同的塔基。八角台石的各面二等分,刻着长方形的额,其内对眼象进行了表现。相同形态的眼象也统一刻在塔基的底座和塔身底座上。塔基部在上台仰莲石和下台覆莲石上采用16叶莲花纹进行了装饰;莲瓣上刻着自高丽中期起流行的华丽花头装饰;八角中台石的每个角都立体雕刻着圆形隅柱。5层的塔身也在八个角上刻着圆形的隅柱,屋盖石则各刻着3级底座。屋盖石屋檐柔和的曲线和圆形的柱子、屋盖底座等很好地展现了将木造建筑采用石材进行展现的面貌。顶部有歇山顶形态、刻着三角图案的覆钵座和宝珠。 水钟寺八角五层石塔是继承高丽时代八角石塔的传统,于朝鲜时代修建的石塔,从出土的舍利庄严和铭文可以得知,其修建年代最晚是1493年,于1628年进行了重修,还确认其为王室发愿的石塔。从样式来看,塔基部为佛像台座样式;塔身为木造建筑样式;上轮部为歇山式屋顶的形态。这种样式是迄今为止所发现的建于朝鲜时代的石塔中唯一的八角五层石塔。 如上所述,水钟寺八角五层石塔是修建年代确定,各部构件保存得比较完整的朝鲜时代唯一八角五层石塔,具有充分的历史、学术价值。

「水鍾寺八角五重石塔」は、京畿道(キョンギド)南楊州(ナムヤンジュ)雲吉山(ウンギルサン)の中腹に位置する水鍾寺にある朝鮮時代の石塔である。水鍾寺は大韓仏教曹渓宗第25教区本寺である奉先寺の末寺であり、朝鮮時代の世祖5年(1459)に創建されたといわれている。石塔は本来、寺院の東の稜線に建っていたと伝わっているが、そこは南漢江(ナムハンガン)と北漢江(プッカンガン)の合流する両水里(ヤンスリ)地域が眺望できる優れた景観に恵まれている。現在は、石造浮屠、小型の石塔とともに大雄殿の隣に移設されている。 水鍾寺八角五重石塔は「平昌(ピョンチャン)月精寺八角九重石塔」や北朝鮮の「普賢寺八角十三重石塔」と同様、高麗時代の八角石塔の伝統を受け継いでいるが、サイズが小規模になり装飾的に変貌を遂げた朝鮮初期の石塔の形を保っている。1957年の解体修理の際、1階の塔身と笠、基壇の中段からは19躯の仏像が、1970年の移設の際には2階と3階の笠部から12躯の仏像が見つかっている。 同時に発見された墨書銘により、これらの仏像のうち、太宗の後妻だった明嬪・金氏(?~1479)が発願・制作し、成宗の後妻達が弘治6年(1493)に納入したという仏像2躯(釈迦如来像1躯と観音菩薩像1躯)、仁穆大妃(貞懿大王大妃)の発願により制作された金銅仏・菩薩像など、崇禎元年(1628)に彫刻僧・性仁が制作した金銅毘盧遮那仏坐像(台座の底に陰刻の銘文有り)が見つかり、石塔建立の下限は1493年で、1628年に建てなおされたことが分かった。 塔の形は礎石の上に八角台石を載せ、その上に仏像の八角蓮華台座のような形式の基壇を築いている。八角台石の各面を2等分し、長方形の額を刻み、その中に眼象を表現している。同様の形の眼象は、基壇の下部と塔身の下部にも統一性が図られて刻まれている。上成基壇部の仰蓮と下成基壇部の覆蓮に16葉の蓮華文の装飾が施されている。蓮弁には高麗中期から流行した華やかな花冠装飾が刻まれており、八角中台の石には、各角に円形の隅柱が立体的に刻まれている。5階の塔身も八角の隅に円形の隅柱が刻まれており、笠にはそれぞれ3段の台が刻まれている。笠の軒の柔らかい曲線と円形の柱、笠を支える台などは、木造建築を石材に再現したような様式である。頂上部は切妻造りの三角形が刻まれた伏鉢と宝珠を戴いている。 水鍾寺八角五重石塔は、高麗時代の八角石塔の伝統を受け継いだ、朝鮮時代に建てられた石塔である。出土した舎利荘厳具や銘文から見て、遅くても1493年に建てられ、1628年に建て直されており、王室の発願により作られたことも確認された。さらにその様式は、基壇部は仏像台座、塔身部は木造建築、相輪部は入母屋造りになっている。このような形式は、現在まで調査された朝鮮時代の石塔の中では唯一の例である。 以上のように、水鍾寺八角五重石塔は制作年代が明らかにされており、各部の部材が比較的良好な保存状態を示す朝鮮時代唯一の八角五重石塔であるため、その歴史的・学術的価値は非常に高いという評価を得ている。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의 석탑이다. 수종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로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온다. 석탑은 원래 사찰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다고 전하며, 이 위치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여 경관이 우수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석조부도, 소형석탑과 함께 대웅전 옆에 옮겨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나 북한지역 향산 보현사 팔각십삼층석탑과 같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이 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시에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다.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서 이 불상들 가운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1479)가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홍치 6년(1493)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숭정원년(1628)에 화원[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다.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다.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낸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건립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도 확인된다. 또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건립연대가 확실하고, 각부의 부재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된 조선시대 유일의 팔각오층석탑으로서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레이션

  •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