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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745호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 (慶州 佛國寺 架構式 石築)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곽
지정(등록)일 2011.12.30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0 (진현동, 불국사 경해루)
시 대 통일신라
소유자(소유단체) 불국사
관리자(관리단체) 불국사

□ 입지 현황 및 역사문화환경

경주 불국사는 신라의 동악(東岳)인 토함산(土含山) 서측 기슭에 위치하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국사의 지형은 북측이 높고 남측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와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으로 지형에 따라 석축을 가구식으로 조화롭게 쌓았으며, 동측 사역에는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을 남북 축선에 배치하면서 회랑을 둘러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대웅전의 동·서측면에는 익랑(翼廊)이 놓여 동·서 회랑과 연결되고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다.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가 있어 대웅전으로 진·출입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대웅전 서편에 한 단 낮은 사역에는 회랑을 둘러 별도로 구획한 공간의 중심에 극락전이 배치되어 있고, 남측에 있는 연화·칠보교와 안양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극락전 동북측에 있는 석축에는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하는 16계단 3열로 조영되어 있는 석계를 통하여 대웅전과 연결된다.

□ 연혁 및 건축적 특징

○ 연 혁

불국사는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辛卯)에 처음으로 불국사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甲寅)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景德王代 大相大城以天寶十年辛卯始創佛國寺,歷惠恭世,以大歷九年甲寅十二月二日大城卒,國家及畢成...)’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751)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8세기 중엽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불국사는 아홉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全燒)되어 석조물만 남았다. 창건기의 석조물로는 사찰 앞 석축과 연화·칠보교, 청운·백운교, 석탑 2기, 석등, 사리석탑, 당간지주, 석조, 각 건물의 기단과 초석 등이 있다.

불국사 대웅전 석축은 조선후기를 지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크게 퇴락된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 석축과 석조물을 보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복원공사를 위하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1970년에 중창되었다.

○ 건 축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축조된 가구식 석축과 조화를 이룬 청운·백운교가 놓였고, 그 앞에는 평지를 이루며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구품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있다. 가람서쪽에 있는 극락전 중심의 구역은 대웅전구역보다 한 단 낮추어 배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면에 안양문을 세우고, 그 앞에는 연화·칠보교의 계단을 축조하였다. 극락전 주위에는 안양문과 연결하여 회랑이 둘러졌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회랑과 연결되어 별도의 회랑을 두지 않았다.

안양문과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였는데, 동쪽 자하문 앞의 것은 백운교의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의 석축을 변화 있게 꾸며 조화를 이루었다. 안양문 앞에서는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석축을 쌓되 중간 중간 칸을 이루어 다듬은 석주(石柱)와 인방석을 가구식으로 걸고, 그 가운데를 자연석으로 채운 행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하층 석축은 밑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범영루의 돌출부 기둥 밑에는 점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또 석교 밑에서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구역의 서측회랑 하부 석축이 포함되는데,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수직의 석주와 수평의 주두석 및 동자주, 초석, 갑석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는 수법으로 쌓았으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 지정 가치

신청 가구식 석축과 연결되어 있는 청운·백운교 및 연화·칠보교는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금번에 신청된 가구식석축 또한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조건축으로 건축적 조형미는 물론 그 기법이 매우 독특하여 신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있다.

□ Location and Historical and Cultural background: The south-facing Bulguksa Temple in Gyeongju is located at the western foot of Tohamsan Mountain, the fabled East Mountain of the Silla Dynasty. The stone elevation was harmoniously built according to the topography of the temple, which is characterized by low west and south, and high east and north. The temple is framed by corridors into which Jahamun Gate, Daeungjeon Hall, and Museoljeon Hall are built. The transepts to the east and west of Daeungjeon Hall connect to the east and west corridors. Jwagyeongnu Pavilion is located in the eastern corner of the south corridor, while Beomyeongnu Pavilion sits in its western corner. Cheongungyo and Baegungyo Bridges, both of which lead to Daeungjeon Hall, are situated in south of Jahamun Gate. Geungnakjeon Hall (Hall of Paradise), which is surrounded by large corridors, is situated west of Daeungjeon Hall at Bulguksa Temple. The hall can be reached via Yeonghwagyo and Chilbogyo Bridges and by Anyangmun Gate. The stone elevation situated to the northeast of Geungnakjeon Hall and consisting of three rows of sixteen steps, which represent the forty-eight vows of Amitabha, leads to Daeungjeon Hall. □ History and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 History - According to Samguk yusa, construction of the temple was begun in 751, the ten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of the Silla Dynasty, by Prime Minister Kim Daeseong and completed on December 2, 774 (the 1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yegong), shortly after Kim’s death. The temple underwent nine series of reconstruction and restoration work between the mid-8th century in the United Silla Period an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during the Joseon Perio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all the temple’s wooden buildings were burned to the ground, leaving only its only stone structures – including the stone elevation, Yeonghwagyo and Chilbogyo Bridges, Cheongungyo and Baegungyo Bridges, two stone pagodas, stone lantern, stupa, flagpole supports, other stone stereobates and building foundations – intact. Centuries later, the stone elevation and other stone structures were repaired in 1923,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while excavation, investigation and restoration works were conducted in 1969. The stone elevation was rebuilt in 1970. ○ Construction - The beautifully constructed Cheongungyo and Baegungyo Bridges are situated in front of Jahamun Gate, before which a now buried pond (gupum yeonji) was one located. The land on which Geungnakjeon Hall is located is lower than the site of Daeungjeon Hall. Yeonghwagyo and Chilbogyo Bridges are situated in front of Anyangmun Gate, which stands in front of Geungnakjeon Hall. The corridors leading to Anyangmun Gate encompass Geungnakjeon Hall, whose eastern corridor connects to the corridor of Daeungjeon Hall. The perfectly composed stone elevations stand in front of Anyangmun Gate and Jahamun Gate. The east stone elevation in front of Jahamun Gate was built by changing the structure of its upper tier on the staircase of Baegungyo Bridge, while the west stone elevation in front of Anyangmun Gate was built by erecting well-trimmed stone pillars with long supporting stones, in between which natural stones were fitted. The stone elevation in front of Jahamun Gate and Beomyeongnu Pavilion was built using huge natural stones for the lower tier, and with processed stones for the upper tier. Stone pillars were erected under the projecting part of the columns of Beomyeongnu Pavilion, while the stone bridge was built with a sophisticated style of rainbow-shaped arch. Stone elevations were also built under the west corridor around Daeungjeon and Geungnakjeon Halls. As regards the stone elevations, rectangular grid frames, in which natural stones were compactly fitted together, were erected with vertical stone pillars and horizontal juduseok (cheomchaseok) stone and short stone pillars, cornerstones, and flat stones. Daeungjeon Hall has a single-tiered stone elevation, while Geungnakjeon Hall has a two-tiered one. □ Value of the Treasure: All four bridges (Cheongungyo and Baegungyo, and Yeonghwagyo and Chilbogyo) have been recognized for their historical and architectural value and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s. The stone elevations related to the bridges, built in the mid-8th century, attest to the excellence of stonemasonry techniques of the Silla Period.

□ 입지 현황 및 역사문화환경

경주 불국사는 신라의 동악(東岳)인 토함산(土含山) 서측 기슭에 위치하며,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불국사의 지형은 북측이 높고 남측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와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으로 지형에 따라 석축을 가구식으로 조화롭게 쌓았으며, 동측 사역에는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을 남북 축선에 배치하면서 회랑을 둘러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대웅전의 동·서측면에는 익랑(翼廊)이 놓여 동·서 회랑과 연결되고 남회랑의 동측 모서리에는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서측 모서리에는 범영루(泛影樓)가 배치되어 있다. 자하문 남측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석계가 있어 대웅전으로 진·출입 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대웅전 서편에 한 단 낮은 사역에는 회랑을 둘러 별도로 구획한 공간의 중심에 극락전이 배치되어 있고, 남측에 있는 연화·칠보교와 안양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도록 꾸며졌으며, 극락전 동북측에 있는 석축에는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하는 16계단 3열로 조영되어 있는 석계를 통하여 대웅전과 연결된다.

□ 연혁 및 건축적 특징

○ 연 혁

불국사는 삼국유사에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辛卯)에 처음으로 불국사을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甲寅) 12월 2일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景德王代 大相大城以天寶十年辛卯始創佛國寺,歷惠恭世,以大歷九年甲寅十二月二日大城卒,國家及畢成...)’는 기록이 있어 경덕왕 때(751)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8세기 중엽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불국사는 아홉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쳤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全燒)되어 석조물만 남았다. 창건기의 석조물로는 사찰 앞 석축과 연화·칠보교, 청운·백운교, 석탑 2기, 석등, 사리석탑, 당간지주, 석조, 각 건물의 기단과 초석 등이 있다.

불국사 대웅전 석축은 조선후기를 지나면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크게 퇴락된 것을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 석축과 석조물을 보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복원공사를 위하여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1970년에 중창되었다.

○ 건 축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축조된 가구식 석축과 조화를 이룬 청운·백운교가 놓였고, 그 앞에는 평지를 이루며 서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구품연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매몰되어 있다. 가람서쪽에 있는 극락전 중심의 구역은 대웅전구역보다 한 단 낮추어 배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정면에 안양문을 세우고, 그 앞에는 연화·칠보교의 계단을 축조하였다. 극락전 주위에는 안양문과 연결하여 회랑이 둘러졌는데 동쪽에는 대웅전 회랑과 연결되어 별도의 회랑을 두지 않았다.

안양문과 자하문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였는데, 동쪽 자하문 앞의 것은 백운교의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의 석축을 변화 있게 꾸며 조화를 이루었다. 안양문 앞에서는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석축을 쌓되 중간 중간 칸을 이루어 다듬은 석주(石柱)와 인방석을 가구식으로 걸고, 그 가운데를 자연석으로 채운 행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하층 석축은 밑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범영루의 돌출부 기둥 밑에는 점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또 석교 밑에서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구역의 서측회랑 하부 석축이 포함되는데,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수직의 석주와 수평의 주두석 및 동자주, 초석, 갑석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는 수법으로 쌓았으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 지정 가치

신청 가구식 석축과 연결되어 있는 청운·백운교 및 연화·칠보교는 일찍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금번에 신청된 가구식석축 또한 8세기 중엽에 조성된 석조건축으로 건축적 조형미는 물론 그 기법이 매우 독특하여 신라 석조건축의 높은 수준을 잘 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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